성연재
| 2026-10-05 08:00:08
(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여행의 중심은 언제나 명소였다.
어디를 봤는지, 몇 곳을 다녀왔는지가 여행의 만족도를 가르는 기준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여행의 기준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유명 관광지를 얼마나 많이 둘러봤느냐보다 그 지역에서 무엇을 먹고, 어떤 문화를 경험했는지가 여행의 기억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특히 미식은 이제 여행의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여행지를 선택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부킹닷컴이 최근 발표한 '여행 행복 지수'를 보면 이런 변화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시아 지역 여행객의 73%가 여행 일정에서 현지 음식을 맛보고 의미 있는 경험을 하는 것을 우선한다고 답했다.
한국 여행객도 71%에 달했다.
실제로 최근 주목받는 여행지들을 보면 음식과 지역문화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인도 코치에서는 케랄라 특유의 향신료와 해산물 음식이 오랜 무역도시의 역사를 보여준다.
마탄체리 향신료 시장과 포트 코치의 오래된 건축물, 수로를 따라 이어지는 마을 풍경은 서로 떨어진 관광지가 아니다.
향신료 무역과 주민들의 생활, 음식문화가 하나의 여행 경험으로 연결된다.
말레이시아 조지타운은 더욱 분명하다.
이곳에서는 한 끼 식사가 곧 도시의 역사다.
차퀘이테오와 아삼 락사, 나시 칸다르 같은 음식에는 말레이와 중국, 인도, 페라나칸 문화가 뒤섞여 있다.
차이나타운과 리틀 인디아를 걸으며 음식을 맛보는 것은 결국 조지타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도시가 됐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일본 가나자와 역시 음식이 지역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도시다.
가가 요리와 화과자, 오미초 시장의 해산물은 금박과 칠기 같은 전통 공예와 함께 오랜 세월 이어진 지역문화를 구성한다.
관광객이 직접 스시나 지부니를 만들어보는 체험이 인기를 끄는 것도 단순히 음식을 먹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지역의 생활방식까지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는 왕실 문화와 전통음식, 공연이 함께 움직인다.
지역 대표 음식인 구덱을 맛보고 바틱을 접한 뒤 가믈란 연주와 자바 전통춤이 어우러진 라마야나 발레를 관람하는 식이다.
음식과 공연, 전통문화가 각각의 관광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지역 경험으로 이어진다.
호주 호바트에서는 술도 중요한 여행 콘텐츠다.
해산물과 와인, 위스키, 수제 맥주가 태즈메이니아 여행의 한 축을 이룬다.
1824년 문을 연 캐스케이드 맥주 양조장에서는 맥주를 마시는 데 그치지 않고 양조장의 역사와 제조 과정까지 살펴볼 수 있다.
한 잔의 맥주가 도시의 역사로 연결되는 셈이다.
이런 변화는 여행산업에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과거에는 랜드마크 하나가 관광객을 불러 모았다면 이제는 시장과 골목, 음식점, 양조장, 요리 교실처럼 주민들의 생활과 맞닿아 있는 공간도 여행의 목적지가 되고 있다.
유명 관광지가 부족한 지역에도 기회가 생긴다는 뜻이다.
대형 박물관이나 세계적인 건축물이 없어도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오래 이어져 온 조리법, 시장과 식당을 둘러싼 이야기가 있다면 충분히 여행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여행객의 시선도 달라졌다.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찾아가는 장소보다 직접 먹고 만들고 이야기를 듣는 경험을 더 오래 기억한다.
부킹닷컴 관계자는 "여행객들이 더 이상 식사를 단순히 끼니 해결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면서 " 시장에서 무엇을 파는지,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즐겨 먹는지, 한 접시의 음식에 어떤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는지를 경험하는 것 자체가 여행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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