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화려함 너머의 싱가포르 ② 북미 정상회담 무대였던 카펠라

성연재

| 2026-03-05 08:00:30

▲ 다양한 용도와 디자인이 매력인 카펠라의 수영장 [사진/성연재 기자]
▲ 하늘에서 본 카펠라 [카펠라 제공]
▲ 카펠라 내부 정원 [사진/성연재 기자]
▲ 2018년 북미회담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카펠라 내부 정원을 산책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통창으로 바깥이 보이는 욕실 [사진/성연재 기자]
▲ 바깥 풍경이 보이는 카펠라의 객실 [사진/성연재 기자]
▲ 북미 정상 공동합의문 서명 장소인 카시아 중식당 [사진/성연재 기자]
▲ 카시아의 코스요리 [사진/성연재 기자]

[imazine] 화려함 너머의 싱가포르 ② 북미 정상회담 무대였던 카펠라

(싱가포르=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여행의 목적은 휴식만이 아니다. 한 시대의 분기점이 됐던 장소를 직접 마주하는 일 역시 여행이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경험이다. 국제 정세가 다시 요동치는 지금, 한때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던 공간은 호기심 어린 여행자의 목적지가 될 수도 있다.

카펠라 싱가포르는 지난 2018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연 장소다. 당시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이 회담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 논의를 둘러싼 역사적 사건이었다.

◇ 북미 정상회담의 무대가 된 카펠라 싱가포르

싱가포르에는 고급 리조트가 많지만, 카펠라는 그중에서도 가장 외부와 철저히 분리된 곳으로 꼽힌다. 도심에서 떨어진 센토사섬의 언덕 위에 자리한 이 리조트는 애초부터 보안과 프라이버시를 전제로 설계됐다.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선택된 이유 역시 이 같은 입지와 구조적 특성에 있다.

접근 동선부터 성격이 분명하다. 싱가포르 본섬과 센토사섬을 잇는 약 700m 길이의 유일한 다리를 건너자마자, 4차선 도로에서 왼편으로 갈라지는 2차선 도로 하나가 나온다. 카펠라로 향하는 유일한 진입로다. 도로 초입에는 소박한 표지석만 서 있을 뿐이다. 좁고 한적한 도로를 따라야만 리조트에 닿는다. 2018년 회담 당시 두 정상 역시 이 길을 통과했다.

외부에서는 내부를 거의 엿볼 수 없고, 접근 자체가 단계적으로 통제된다. 화려한 랜드마크를 기대했다면 첫인상은 의외로 절제돼 있다는 느낌일 것이다. 오히려 외부에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사용되던 유럽 왕실의 비밀 별장을 떠올리게 한다.

호텔 곳곳에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다. 두 정상이 만나 악수한 곳은 본관과 병사 건물 사이의 공간이다. 그곳에는 금박으로 두 사람이 만났던 장소라는 표식을 해뒀다. 오늘날 수많은 숙박객이 무심코 지나가고 있지만, 우리 모두의 시선이 주목됐던 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 럭셔리 리조트의 품격

넓은 소파에 앉아 있으니 컨시어지가 나타나 체크인을 도와준다. 체크인한 뒤 그의 안내를 따라 객실로 이동했다. 객실로 들어서는 그는 신발을 벗는다. 알코올을 제외한 미니바는 무료이며, 하루 최대 다섯 벌까지 다림질 서비스가 제공된다. 널따란 객실로 들어서니 커튼이 자동으로 올라간다. 한쪽에 마련된 욕조 앞에는 통창으로 바깥이 보인다. 혼자 쓰기 너무 아쉬운 객실이다.

공용 공간 가운데 중심이 되는 곳은 본관 2층의 '리빙룸'이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애프터눈 티가 제공된다. 그 외 시간에도 커피와 차, 간단한 간식이 상시 준비돼 있다. 노먼 포스터가 기존 구조를 확장해 설계한 공간으로, 투숙객이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기보다 필요할 때 드나드는 방식이다.

야외에는 계단식으로 연결된 수영장 세 곳이 있다. 가장 위쪽은 성인 전용 풀, 중간은 가족 풀, 가장 아래는 직사각형 형태의 랩 풀이다. 자연 지형을 따라 배치돼 수영장 간 시야 간섭이 적고, 밤이 되면 조명이 켜지며 분위기가 달라진다. 샤워 시설과 탈의 공간도 각 수영장 인근에 분산돼 있다.

웰니스 시설인 아우리가 스파는 별도의 동선으로 운영된다. 월식 주기와 별자리 개념을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9개의 트리트먼트 룸과 허브 스팀룸, 사우나를 갖췄다. 투숙객은 예약 없이 사우나를 이용할 수 있고, 스파는 외부 고객도 이용할 수 있다.

해가 지면 동선은 자연스럽게 밥스 바로 이어진다. 상층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이 공간은 낮에는 음료와 간단한 식사를, 저녁 이후에는 칵테일 중심으로 운영된다.

카펠라에서 수영장을 따라 5분 가량 걸어 내려가다 보면 바로 해변이 나온다. 나무로 만든 원숭이 모양의 조형물이 색다른 감성을 제공한다. 이곳에서는 아침마다 해변을 따라 조깅하는 사람들로 생동감을 내뿜는다.

'헤리티지 & 아트 투어'는 카펠라가 제공하는 정규 문화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매일 정해진 시간, 호텔 소속 컬처리스트(Culturist)가 직접 이끈다. 이 투어는 호텔의 외관이나 시설을 보여주는 일반적인 설명이 아니라, 이곳이 놓인 역사적 맥락과 공간의 기억을 읽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카펠라 싱가포르의 핵심 건물들은 1880년대 영국 식민지 시절 군 장교와 가족들을 위해 지어진 방갈로에서 출발했다. 컬처리스트는 건물의 배치와 구조, 복수의 출입문이 필요한 이유, 당시 군 시설과 거주 공간의 경계가 어떻게 설정됐는지를 차분히 설명한다.

보존 과정 역시 투어의 중요한 부분이다. 기존 건축물의 비례를 해치지 않기 위해 증축 높이를 제한한 설계, 일부러 낮춘 천장, 원형을 유지한 외벽 등은 과거의 유산 위에 현재를 투영하겠다는 카펠라의 철학을 보여준다. 리조트 전반에는 900점이 넘는 예술 작품이 배치돼 있다. 사진, 회화, 조형물까지 형태는 다양하지만, 장식에 그치지 않고 공간 구성의 일부로 작동한다.

◇ 북미회담 장소에서 먹는 특별함

싱가포르 센토사섬 언덕에 숨듯 자리한 카펠라 싱가포르. 이곳 2층 중식당 카시아는 2018년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가 조인식을 진행했던 바로 그 공간이다. 보안과 동선, 프라이버시를 최우선으로 설계한 장소에서 필자는 당시 회담 테이블과 거의 맞닿은 자리를 예약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는 카시아의 시그니처 차로 시작됐다. 향은 또렷했지만 과하지 않았고, 입안에서는 부드럽게 풀렸다. 차 한 잔만으로도 이곳이 단순한 '의전의 식탁'을 넘어, 정제된 미식의 무대임을 예고한다.

첫 요리는 특유의 양념에 절인 토마토로 미각을 산뜻하게 깨운다. 이어 매실에 절인 전복을 매콤한 칠리소스로 조리한 요리가 나왔다. 전복의 탄력은 살아 있고, 매실의 은은한 산미가 전체 맛의 균형을 잡는다.

중반부에는 장시간 우려낸 피시 마우 수프가 이어진다. 깊은 농도 위로 벚꽃 향이 미묘하게 겹치며, 진하지만 절대 무겁지 않다. 주요리로는 사쿠라 치킨과 그루퍼찜이 차례로 오른다. 사쿠라 치킨은 육즙을 가둔 채 은은한 향을 남기고, 그루퍼 필레는 찜 조리의 정공법으로 재료의 질을 증명한다. 열대 지방 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 자주 만났던 거대한 그루퍼를 식탁 위에서 만났다.

마무리는 와규 볶음밥이다. 와규의 풍미가 밥알 사이로 스며들고, 말린 가리비와 파, 채소가 감칠맛을 더한다. 디저트는 차갑게 굳힌 아보카도 크림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어 식사의 끝을 산뜻하게 닫는다.

[취재협조] 카펠라 싱가포르·싱가포르항공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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