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재
| 2026-02-05 08:00:19
[imazine] 다시 보이는 로마 ② 예술과 건축 그리고 미식
(로마=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지중해 전역과 유럽, 아프리카 북부까지 지배했던 로마는 역사상 보기 드문 규모의 제국이었다. 여행자들은 고대에 세워진 건축물의 압도적인 규모에 놀라고,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바꾼 거장들의 작품 앞에서 감탄한다. 정치·행정의 중심지였던 로마는 동시에 미식의 도시이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오늘날에도 합리적인 가격대의 식당부터 한국인의 입맛에 비교적 잘 맞는 음식까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 로마의 예술
로마에서 예술을 접하는 과정은 다소 체력이 요구된다. 대부분의 전시가 벽과 천장에 집중돼 있어 고개를 든 채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목 근육이 피로해지지만, 관람을 멈추기가 쉽지 않다. 여정의 출발점은 보르게세 미술관이었다. 이 미술관은 이탈리아 정부가 보르게세 가문으로부터 매입해 1902년 개관한 곳이다. 베르니니, 라파엘로, 카라바조, 티치아노 등 거장들의 작품이 소장돼 있어 미술 애호가 사이에 인기가 높다.
이 미술관은 원래 17세기 초 건립돼 보르게세 가문의 별궁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으로 꼽히는 '빌라 보르게세' 한가운데 위치한 이 미술관은 중세 유력 가문 출신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이 수집한 회화와 조각을 보관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보르게세 미술관은 고요하지만, 작품의 밀도는 높다. 베르니니의 조각 앞에 서면 보르게세 미술관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페르세포네의 납치'다. 저승의 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장면을 묘사한 대리석 조각 작품이다. 매끄러운 살결과 하데스의 손에 눌린 허벅지 살의 디테일이 실감 나게 표현돼 관능적인 느낌을 준다.
베르니니의 '다비드'는 몸을 비틀어 돌을 던지기 직전의 긴장감이 잘 표현돼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이자 화가, 건축가였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가 이상적 인간상을 표현했다면, 베르니니의 다비드는 역동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황이 머무는 바티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전시관이다. 그중에서도 '라오콘 군상' 앞에서는 모든 관람객의 걸음이 멈춘다. 뱀에게 휘감긴 트로이의 신관 라오콘과 두 아들의 근육과 표정에는 고통스러운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은 1506년 발굴돼 바티칸 미술관에서 공개됐다.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 작품 가운데 하나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은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하는데, 여러 피에타상 가운데 유난히 따스한 느낌이 든다. 이 작품은 50여년 전 한 정신병 환자의 망치 테러로 상당 부분 손상됐다가 복구됐다.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서면 목 근육에 부담이 가중된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는 사진으로 접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한 장의 대작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알고 보면 천장 가득히 채워진 연작 그림 가운데 하나다. 고개를 90도로 꺾은 채 잘 살펴봐야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신이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찰나를 포착한 작품이다. 사진 촬영은 금지돼 있다.
◇ 로마의 건축
로마의 건축을 얘기할 때 바티칸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324년에 처음 세워진 성 베드로 성당은 무척 아름답다. 15세기 말 교황 율리우스 2세가 건축가 브라만테에게 재건을 맡겨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막대한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교황청은 면죄부를 판매했고, 이는 마르틴 루터의 반발을 불러 종교개혁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가톨릭과 분리된 개신교가 등장했다.
베드로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공간의 크기에 압도된다. 시선은 머뭇거리고,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잠시 판단이 흐려진다.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기둥과 서로 다른 색의 석재가 벽과 천장을 채우고, 곳곳에 수많은 조각 작품이 배치돼 있다. 베르니니가 설계한 중앙 제단의 황금빛 발다키노(천개, 天蓋)는 그 규모와 섬세한 장식에 압도당한다.
로마의 건축을 얘기할 때 판테온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2천 년 가까이 버텨온 이 돔은 그 자체가 불가사의에 가깝다. 돌벽을 쌓은 뒤 가운데 큰 원형 구멍을 남긴 채 돔을 제작한 기술력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빛과 비가 그대로 내부로 들어오며, 하늘과 공간이 직접 연결된다.
판테온 앞에서는 지금도 종종 웨딩 촬영이 이어진다. 2천 년의 시간을 품은 석조의 돔을 배경으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환하게 웃는다. 순결한 아름다움을 지닌 신부는 가정을 이루고 세대를 잇다가 언젠가 땅에 묻힐 것이다. 그러나 제국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판테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조국의 제단'으로 불리는 로마 중심부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은 콜로세움과 함께 오늘날 로마를 상징하는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1885년 착공한 이 건축물은 통일 이탈리아 왕국 성립 50주년에 맞춰 1911년 완공됐다. 2천800년 역사의 로마에서 보면 110여 년 된 비교적 신축 건물이다.
기념관은 고대 그리스·로마 신전을 닮은 외형과 거대한 규모로 주변 시가지를 압도한다. 넓은 계단 끝에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조국의 제단이 1921년 추가됐다. 한편 로마 시민들 사이에서는 이 건물을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지나치게 하얀 대리석으로 건축돼 도시 분위기를 깨뜨리며, 로마의 가장 중요한 언덕 가운데 하나인 캄피돌리오 언덕의 풍경을 가린다는 이유로 한때 철거론까지 제기됐다.
이곳에서는 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 로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2만원가량의 입장료를 내면 엘리베이터를 타면 정상에 오를 수 있으며, 석양 무렵이면 연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 로마에서 엿본 미식
저녁 무렵 영화 '로마의 휴일'의 배경이 된 유명한 관광지 스페인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 옆에는 '바빙턴스 티룸'이 있다. 로마에 관광을 왔던 영국인 부인 2명이 로마에 푹 빠져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다가 티룸을 차렸다고 한다. 짙은 향기를 지닌 홍차 한 잔과 디저트를 주문했다.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였다. 영국을 대표하는 홍차인 애프터눈 티는 로마 한복판에서 이질적이지 않고 잘 어울리는 듯했다. 달지 않은 케이크와 홍차는 다소 무리했던 하루를 정리해주기에 충분했다.
판테온 바로 옆에 자리한 '타짜 도르 커피'는 로마의 커피 문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에스프레소 가격은 한 잔에 1.4유로에 불과하다. 매장에 들어서면 먼저 계산대에서 원하는 음료를 주문하고 종이를 받은 뒤, 이를 바리스타에게 건네는 방식이다. 에스프레소는 대부분 입석으로 받아 곧바로 마시고 나간다. 산미는 적은 편이며, 부드럽고 진한 질감이 입안을 채운다. 다만 모든 메뉴가 같은 만족도를 주지는 않는다. 빵류는 크림이 지나치게 많아 다소 느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티칸 인근 골목에서도 맛집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좌석이 대여섯 석 남짓 되는 작은 식당이 많은데, 대체로 줄을 길게 서 있다. 줄이 길게 늘어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파스타 맛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현지 음식이 부담스러워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소꼬리찜만큼은 '실패'를 하지 않았던 경험이 여러 번 있다. 콜로세움 인근에도 소꼬리찜을 내놓는 식당이 있다. 운 좋게 몇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번잡한 식당가에서 한 골목 비켜나 있어 분위기는 한결 한적했지만, 유명세 탓에 대기 손님이 이어져 있었다. 이곳은 소꼬리찜을 비롯한 음식 전반의 완성도가 높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응대가 친절한 곳이었다. 재밌는 것이 빵을 주문하면 누런색 종이봉투에 담아서 테이블 위에 놓고 간다. 먹다가 남으면 쉽게 포장해 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 '소매치기 천국' 로마…도난 대비는 필수
로마 여행에서 가장 큰 부담은 유적의 규모나 동선이 아니라, 도난에 대한 상시적인 긴장감이다. 실제 여행자들이 현장에서 체득한 다양한 '도난 예방 요령'을 정리했다.
첫째, 눈에 띄지 않는 차림이 기본이다. 관광객처럼 보이기보다는 최대한 현지인처럼 소박하게 다니는 것이 좋다. 과한 복장이나 값비싼 소지품은 불필요한 시선을 끈다.
둘째, 여권과 현금은 몸에 밀착해 보관한다. 복대를 활용해 바지와 속옷 사이에 착용하면 번거롭지만, 심리적으로는 가장 안전하다. 숙소가 비교적 안전하다면 여권 원본은 두고, 사본만 휴대하는 방법도 많이 쓰인다.
셋째, 지퍼가 달린 바지를 선택하고, 당일 사용할 현금만 소액으로 나눠 넣는다. 50유로나 100유로 정도가 적당하다. 일반 지갑은 들고 다니지 않고, 필요하다면 동전 지갑 정도로 최소화한다.
넷째, 가방은 깊이가 깊고 몸에 밀착되는 에코백이 유용하다. 크로스백보다 가볍고, 안이 깊어 물건을 꺼내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물건을 훔치기가 어렵다.
다섯째, 배낭에 과도한 잠금장치는 피한다. 오히려 귀중품이 들어 있다는 신호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급하게 열다가 가방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평범한 여행용 백팩이 가장 무난하다.
여섯째, 휴대전화 도난 방지 장치는 필수다. 지도를 보기 위해 휴대전화에 집중하다 소매치기를 당하는 일도 잦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능하면 대중교통보다 우버를 타고 이동하고 시내는 도보 이동을 선택한다. 사람이 밀집된 버스나 지하철보다 걷는 편이 주변을 살피기 쉽고,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도 편하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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