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 2026-06-30 07:35:00
[시간들] 홍명보의 추락, 영웅은 왜 명감독이 되지 못할까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압박축구의 선구자인 이탈리아의 명장 아리고 사키(80)는 선수로서는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이탈리아 하부리그에서 뛰다 20대 중반에 선수 생활을 접은 그는 낮에는 신발 판매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전술을 연구하며 명장의 꿈을 키웠다.
그런 그가 각고의 노력 끝에 41세에 명문 AC밀란 사령탑에 오르자 이탈리아 언론은 "신발 장수가 스타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느냐"며 조롱을 퍼부었다. 그러나 사키는 부임 첫 시즌 세리에A 우승을 이끌며 선입견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그때 그가 남긴 한마디는 지금도 감독론의 고전으로 회자한다. "기수가 되기 위해 말이 될 필요는 없다."
반대로 '축구의 신' 디에고 마라도나는 감독으로서는 패배자로 남았다. 국민적 기대 속에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지휘했지만 8강 탈락에 그쳤다. 브라질 축구의 영웅 지쿠는 일본 대표팀을 맡아 2006년 독일 월드컵에 나섰으나 조별리그 탈락의 쓴맛을 봤다. 독일의 전설적인 골잡이 위르겐 클린스만도 이름값 덕에 한국 사령탑에 올랐다가 무책임한 감독이란 오명을 안고 물러났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아시아의 표범' 이회택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3전 전패를 기록했다. 유럽 무대를 호령했던 차범근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한 뒤 경질됐다.
많은 스타 출신 감독이 실패하는 것은 천재가 범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곧잘 비유된다. 천재인 자신에게는 너무도 쉬운 플레이가 선수들에게는 전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놓치기 때문이다.
감독의 역할은 자신만의 감각과 전술을 선수 개개인에 이해시키고 이를 조직력으로 묶어내는 데 있지만, 스타 출신일수록 이런 기본에 서툴다. 생각대로 팀이 돌아가지 않으면 따뜻한 격려 대신 "네가 선수냐", "이게 팀이냐"고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다. 그때부터 선수들은 '스타면 다냐'는 반감을 품게 되고 감독의 리더십은 흔들린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책임을 지고 홍명보 감독이 결국 사퇴했다. '영원한 리베로'로 불리며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던 그의 퇴장은 개인의 실패를 넘어 한국 축구가 함께 떠안아야 할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제 한국 축구는 새로운 사령탑을 선택해야 한다. 더 이상 이름값과 선수 시절의 영광만 보고 감독을 선임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거스 히딩크 역시 선수 시절 스타가 아니었지만,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 하나의 팀으로 만드는 리더십을 발휘해 세계적 명장이 됐다.
한국 축구가 이번만큼은 '스타 감독'이 아니라 '좋은 감독'을 선택하길 바란다. 그러려면 특정 대학 출신 중심의 선수 선발과 지도자 선임 등 '끼리끼리 해먹기'라는 문화부터 끊어내야 한다. 고질을 도려내지 않은 채 흘러간 스타를 다시 불러들인다면, 홍명보의 실패는 또 다른 실패의 시작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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