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 2021-08-17 07:45:05
밴드 아도이 "팬데믹 속에서 만든 변곡점 같은 앨범"
1년8개월만의 신보 '허'…상업성과 독립성 사이 '커머셜 인디' 표방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작열하던 여름의 공기가 문득 선선해지는 계절에 밴드 아도이(ADOY)의 음악은 잘 어울린다. 청량하면서도 아련함이 깃든 사운드는 언젠가 지나갈, 혹은 지나가 버린 청춘을 애틋하게 상기시킨다.
2017년 5월 EP(미니앨범) '캣닙'(CATNIP)으로 데뷔한 아도이는 신스팝을 기반으로 한 감각적인 음악으로 인디 신의 '대세' 밴드로 떠올랐고 해외를 무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캣닙'과 '러브'(LOVE) 두 장의 EP를 발매한 뒤 2019년 11월에는 첫 정규앨범 '비비드'(VIVID)를 내놨다.
그러나 정규 1집을 내고 얼마 안 가 팬데믹이란 복병을 만났다. 팬데믹의 낯선 상황에서 작업한 신보에는 새로운 시도가 담겼다. 아도이가 지난 15일 발매한 새 EP '허'(her)다.
최근 종로구 수송동에서 만난 아도이의 오주환(보컬·기타)은 "변곡점이자 의지"라고 신보를 설명했다. 그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계속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변곡점 같은 앨범이란 말대로 시각 요소부터 변화가 눈에 띈다. 데뷔 EP부터 아도이 앨범의 커버를 채워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졌던 아오키지 작가의 만화적 일러스트 대신 이번에는 스페인 일러스트레이터 아그네스 리카트와 작업했다.
강렬하면서 오묘한 눈빛으로 프레임을 가득 채운 여성의 얼굴은 앨범 제목과도 직관적으로 연결된다. 신시사이저를 맡은 지(Zee)는 "저희가 생각하는 '허'보다는 리스너들이 생각할 각자의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작 '비비드'가 아도이의 음악을 다채로운 스타일에 담았다면, 6곡이 실린 이번 앨범은 한 편의 사랑 영화처럼 벅차올랐다가 애상적으로 가라앉는 구성이 두드러진다.
몽환적인 첫 트랙 '심플리'(Simply)가 "제일 아도이의 색깔에 근접한 곡"이라면, 두 번째와 세 번째 트랙인 '안티히어로'(Antihero)와 '세인트'(Saint)는 "로킹한 느낌을 가미"해 질주하는 듯한 몰입감을 안긴다.
선공개한 네 번째 트랙 '베이비'(Baby)를 거쳐 앨범 후반부 'NY'와 연주곡 'Up'에 이르면 여름날 땀을 식히듯 어느덧 공기가 바뀌어 있다. 지는 "익숙한 색깔로 아도이의 세계에 들어온 뒤 롤러코스터처럼 올라갔다가 차분하게 가라앉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네 멤버는 아도이에 모이기 전 각자 다양한 팀에서 활약하며 인디음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다. 오주환과 드러머 박근창은 밴드 이스턴 사이드킥에서 활동했고, 지는 같은 레이블의 프럼 디 에어포트에 몸담았다. 정다영(베이스·보컬)은 트램폴린 등의 팀을 거쳤다.
정다영은 "지가 곡의 뼈대를 만들어 오면 나머지 멤버들이 거기에 어울릴 만한 멜로디나 가사 아이디어를 생각해 오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된다"고 소개했다.
그는 아도이의 음악 색깔이 만들어지는데 "지의 역할이 크다"며 "세 명은 홍대에서 밴드를 오래 해서 이전에 했던 음악 작업 방식이 비슷한 편인데 지는 가요 작업 경험도 있다.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가지고 있는데 지가 그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도이 특유의 균형감각은 '커머셜 인디'라는 이들의 독특한 지향점에도 녹아 있다. 이들은 '엔젤하우스'라는 독자 레이블을 직접 운영하며 음악적 독립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팀의 비즈니스적인 부분을 맡아 하는 오주환은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팀들의 메이저 시장이 있고 인디 시장이 있다면 그 교집합 속에서 계속 머무르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저희는 다 인디를 해봤기 때문에 좀 많은 사람이 저희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예전에 가요 작업을 할 때는 약간 공장처럼 찍어내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고요. 자체 수공업처럼 색깔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커머셜한 음악을 만들려고 했어요."(지)
"아도이를 하기 전에는 '우리 팀 노래 이렇게 좋은데 사람들이 왜 몰라주지'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걸 항상 답답해했고 현실이 안타깝기도 했어요. 아도이를 하면서 그 생각이 바뀌게 됐어요."(정다영)
"저희가 '커머셜 인디'라는 단어를 진짜 대변하는 밴드가 된 것 같기도 하다"는 오주환의 말처럼 아도이는 유의미한 궤적을 내고 있다.
'K-인디차트' 1위 등 국내 반응에 더해 아시아권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홍콩, 태국,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 투어 공연을 열었다. 영어로 된 자신들의 노래 가사를 아시아 관객들이 따라부르는 모습은 멤버들에게도 신기한 광경이었다.
'비비드' 발매 이후에는 미국·유럽 투어로 활동반경을 넓히려는 계획도 있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강제 휴직"을 당하다시피 했다. 국내 단독공연과 아시아 투어 등이 잇따라 취소되면서 멤버들의 아쉬움도 컸다.
그러나 이들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시도도 이어가려 한다. 이달 21일에는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밴드 도시(dosii)와 함께 공연을 연다. 오주환은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는 아도이라는 팀이 멤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박근창은 "제 음악 인생에 있어 제일 큰 무대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 팀이다. 저한테는 되게 소중한 팀"이라고 힘줘 말했다.
"제게는 마지막 밴드예요.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해보자'고 해서 만든 팀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못해 본 경험도 아도이를 통해 많이 해봤고요. 아직 가능성이 많으니 재미있는 것들을 더 많이 하면서 지내고 싶어요. 그동안 4년이 되게 재밌었거든요."(오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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