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나
| 2026-10-06 07:00:07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조선의 네 번째 임금인 세종(재위 1418∼1450)은 새로운 왕조의 번성을 이끈 '성군'으로 꼽힌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나라를 건국한 지 6년째 되던 해인 1397년 음력 4월 10일 한양 준수방(俊秀坊)에 있던 태종(재위 1400∼1418)의 잠저에서 태어났다.
당시 왕자 신분이었던 태종의 거처에서 출생한 것이다.
준수방은 조선 왕조의 수도였던 한성부 북부에 속한 지역으로, 경복궁의 서쪽, 즉 서촌 지역에 해당한다. 이에 준수방을 통인동 혹은 옥인동 부근으로 추정해왔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자하문으로 가는 길가에는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있어 왕가의 역사가 깃든 준수방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 위치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2012년 발표된 '조선 초기 경복궁 서쪽 지역의 장소성과 세종 탄생지'(박희용·이익주) 연구 논문에 따르면 한글학회와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는 1956년 조사를 거쳐 통인동 137번지 일대를 세종 탄생지로 추정한 바 있다.
그러나 조선 초 행정구역 체계, 당시 왕족과 권력층의 집터 규모 등을 고려하면 통인동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걸친 넓은 범위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20년 가까이 세종의 흔적을 쫓아온 이주화 전주이씨 영해군파종회장은 "위대한 성군 세종대왕이 태어난 준수방의 역사를 함께 기억하고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의 17번째 아들인 영해군(1435∼1477)의 후손인 이 회장은 최근 창성동 일대에 지하 1층·지상 3층 건물을 사들여 '세종준수방기념관'을 열었다.
최근 서울 동작구 양녕회관에서 만난 이 회장은 "세종대왕이 나신 준수방을 중심으로 기념관을 운영하며 선양 사업에 보다 힘쓰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기념관 위치에 관해 "역대 거주자들 사이에서 세종대왕이 나신 터로 알려진 곳"이라며 "예부터 '명당'이라고 알려진 자리라고 한다"고 귀띔했다.
국제 화물 운송업체 일호로지스틱스의 대표인 이 회장이 직접 나서서 작게나마 기념관을 꾸리게 된 건 답답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는 세종의 직계 손으로서 수년 전부터 준수방 위치를 찾거나, 탄신 터를 복원하기 위한 논의에 참여했으나 쉽사리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영해군파종회를 중심으로 여러 단체가 모여 정치권과 함께 토론회도 열었지만, '세종대왕탄신기념관'(가칭) 건립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이 회장은 "비록 작은 규모지만 기념관을 만들어 세종대왕이 나신 곳의 의미를 알리면 더 큰 관심이 모일 것이라 믿는다"고 힘줘 말했다.
'세종대왕 나신 날'인 5월 15일에 문을 연 기념관은 현재 '임시' 운영 중이다.
지하 공간에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와 태종, 세종의 모습을 담은 영정과 왕권을 상징하는 어보(御寶·임금의 도장) 복제본 등이 전시돼 있다.
현재는 종친이나 관계자를 대상으로만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전시 공간 한편에서는 '세종대왕탄신기념관' 건립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으며, 준수방의 의미를 알리기 위한 여러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 회장은 준수방의 역사가 K-컬처의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세종대왕은 우리 모두의 위대한 문화 자산"이라며 "세종대왕이 나신 준수방과 탄신의 의미를 통해 그 위업을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준수방 일대가 'K-문화 거리'가 됐으면 좋겠다며 추후 국가적 차원의 '세종대왕탄신기념관'이 건립될 수 있도록 각계각층의 관심을 당부했다.
이 회장은 이달 9일 한글날에 맞춰 기념관 앞마당에 세종대왕상도 세울 예정이다.
기념관 관계자는 "동상은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상을 제작할 때 토대가 된 '원본'에 해당한다"며 "한글날에 맞춰 봉안할 것"이라고 전했다.
동상 앞부분에는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라는 문구로 잘 알려진 '용비어천가'를 새길 예정이다.
한글학자인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이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집자했다.
"세종대왕과 관련한 문헌, 자료가 있다고 하면 프랑스, 미국 등 어디라도 갔습니다. 제대로 된 기념관이 들어설 때까지 후손으로서 더 노력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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