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1시간이라도 무죄였으면"…재심 막힌 납북어부 55년의 한

진실화해위 '재심 권고' 139건 중 50건은 여전히 이행 안 돼

양수연

| 2026-08-13 07:30:01

▲ 납북귀환어부 김영수씨가 쓴 탄원서 일부 [김영수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재심 개시 촉구하는 동해안 납북귀환어부들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30일 오후 강원 춘천시 춘천지방법원 앞에서 동해안납북귀환어부 피해자시민모임과 공익법률센터 파이팅챈스가 납북귀환어부 재심 지연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뒤 춘천지법 관계자에게 진정서를 내고 있다. 2026.4.30 conanys@yna.co.kr
▲ 인사하는 이재명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진실화해위 3기 출범 계기 국가폭력 피해자 위로 오찬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참석자를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26.8.7 superdoo82@yna.co.kr

(서울=연합뉴스) 양수연 기자 = "두 번 다시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 속에서 피를 토하는 한 맺힌 이 노인네의 절규가 없도록 하루속히 재심 재판이 재개되어 억울한 누명, 빼앗기고 짓밟힌 이 인간의 인생을 찾아주십시오."

납북귀환어부 김영수(72)씨는 지난달 28일 정성호 법무부장관에게 보낸 탄원서에 이렇게 적었다.

반공법 위반 혐의로 10년 동안 옥살이를 한 김씨는 지난해 3월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을 받고 재심 권고까지 끌어냈지만 지금까지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이 나오지 않았다.

김씨의 비극은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7세였던 그는 강원도 속초항을 출항해 동해상에서 조업하던 제2승해호에 탑승했다가 다른 20명의 선원과 함께 북한 경비정에 납치됐고, 약 1년 만에 속초항으로 귀환했다.

이후 시찰대상자로 편입돼 수시로 조사받던 김씨는 1975년 군에 입대한 뒤 이듬해 휴가를 나왔다가 보안부대에 연행된다.

납북귀환 이후 북한을 찬양해왔으며 월북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이후 김씨는 반공법 위반으로 10년간 대구교도소 독방에 수감됐다.

출소 후에도 보안관찰대상자로 수사정보기관의 지속적인 감시와 사찰에 시달렸고, '빨갱이' 딱지가 붙어 가족과도 흩어지고 정상적인 생계조차 꾸리기 어려워 현재까지도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다.

이 사건을 조사한 진실화해위는 "적어도 37일간 영장 없이 불법구금 상태에서 수사받았고, 이 가운데 폭행, 협박 및 여러 가혹행위를 당하며 여러 차례 진술서 작성을 강요받아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허위자백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국가의 사과와 명예 회복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김씨가 법원에 재심을 신청하자 검사는 지난달 "피고인의 주장 및 진실화해위 결정만으로 당시 군 수사기관의 불법체포 등 범죄가 확정판결을 대신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재심 청구 기각 의견을 제시했다.

형사소송법은 법원이 재심 개시나 기각 여부를 언제까지 결정해야 한다는 시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재심 청구인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속을 태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김영수씨는 1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돈 몇 푼 나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제 다 늙었는데 돈이 나오면 내가 다 쓰고 죽겠나"라며 "죽기 한 시간 전이라도 무죄가 돼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원한다"고 했다.

그는 납북됐던 1971년부터 지금까지 55년 간 한 맺힌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김씨처럼 국가폭력의 진실이 규명되고도 재판의 문턱을 넘지 못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재심 지원' 유형으로 관리되는 2기 진실화해위의 재심 권고는 지난 6월 기준 139건이며 이 가운데 50건이 여전히 이행되지 않은 상태다.

진실화해위의 재심 권고가 나왔더라도 실질적인 법률 지원이 뒤따르지 않아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복잡한 재심 청구 절차와 비용은 대부분 고령인 데다 법률 지식이 부족한 피해자들이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진실화해위가 한때 대한법률구조공단 등과 협력해 법률구조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으나, 법률적 근거가 부재한 가운데 현실화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행정안전부의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이 맡아왔던 권고 사항 이행 관리가 지난 6일부터 국무조정실 산하에 신설된 '권고사항 이행관리단'으로 이관되면서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권고 이행 상황을 국무총리가 직접 총괄하도록 격상된 만큼 기관 간 협의와 권고 이행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7일 국가폭력 피해자 위로 오찬을 열고 "과거사정리법 개정으로 국가폭력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를 배제하고 권고 이행 체계를 국무총리 총괄로 격상했다"며 "새로운 시스템 속에서 피해자의 존엄 회복과 명예 회복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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