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8-09 07:11:00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사람들은 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알고도 외면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불리한 사실이라면 더 그렇다.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 자본과 양극화의 소음 속에서 진실은 쉽게 왜곡되거나 침묵 속에 묻힌다.
작가 박혜수(52)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집단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말하지 않아 왔는지 묻는다. 집단의 결속을 위해 만들어진 경계는 누군가를 내부자로 보호하는 동시에 누군가를 외부자로 밀어낸다.
서울 종로구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혜수 개인전 '사람들은 진실에 관심이 없다'는 진실을 외면하고 타인을 배제하는 사회의 구조를 관람객이 직접 마주하게 한다.
조각과 설치를 기반으로 영상, 출판, 퍼포먼스까지 매체를 확장해 온 박혜수는 이번 전시에서 진실을 알면서도 집단의 이익과 결속을 위해 외면하는 사회의 태도를 겨냥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사람들은 진실을 알면서도 진실을 말하면 그것에는 관심 없다고 말한다"며 "진실이 아무 소용이 없어지게 된다면 그건 지옥문이 열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누가 아기 신발을 팔았을까?'는 영상 작품이다. 헤밍웨이의 작품으로 알려진 여섯 단어 소설 "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신지 않았음"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영상에는 세대와 성별, 좌·우 정치 성향을 대표하는 6명이 나와 '누가 아기 신발을 팔았는가'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그러나 토론은 진실에 다가가기보다 상대를 공격하고 각자의 입장을 강화하는 말싸움으로 흘러간다.
'나라 없는 사람 Ver.26'은 분쇄된 화폐 더미와 6채널 사운드 모빌, 서치라이트로 구성된 설치작품이다.
한국은행에서 기증받은 1t 분량의 분쇄 지폐를 피라미드처럼 쌓고, 천장에는 360도 회전하는 서치라이트를 설치했다. 쉴 새 없이 공간을 가르는 빛은 부를 지키려는 기득권의 감시망을 연상시킨다.
그 옆에는 '내가 꿈꾸는 나라'에 관한 탈북민과 관람객의 인터뷰 음성을 교차해서 들려준다. 관람객은 돈이 유일한 권력이 된 사회에서, 저마다 이상향을 향해 품은 소박한 갈망을 목격하게 된다.
관람객 참여 작업은 전시의 질문을 더욱 직접적으로 밀어붙인다.
'우리에 갇힌 우리'는 작가가 수집한 설문 응답을 바탕으로 관객을 7개 집단으로 분류하는 참여형 설치작품이다. 관람객은 전시장 입구에서 MBTI(성격유형검사)처럼 간단한 설문을 통해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속하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본인이 속한 집단 구역으로 가면 자기 집단의 강점과 취약성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일부 관람객은 설문조사 결과 아무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는다. 그러면 경고음과 함께 공동체를 위협하는 '침입자'로 낙인찍힌다. '우리'와 '저들'을 가르는 기준이 어떻게 배제의 논리로 작동하는지 몸으로 경험하게 하는 작업이다.
'그림자에게 몸을 맡기다'는 빛이 없는 방으로 꾸며졌다. 어둠의 방에서는 혐오를 조장하는 선동가의 목소리, 침묵을 강요하는 권력자의 위협, 피해자들의 처절한 목소리가 뒤섞여 나온다.
하지만 관람객이 '블랙미러' 앞에서 진실을 말하면 소음은 사라지고 어둠도 걷히게 된다. 관람객이 말해야 하는 진실은 입장 때 받은 티켓에 힌트가 있다.
작가는 "누군가 목소리를 내줘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그 속에 묻혀 있는 피해자들이 튀어나오지 못한다"며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가상의 기업 '퍼펙트패밀리'가 관람객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대여하는 퍼포먼스 '휴먼렌탈서비스: 듣기만 하는 사람', 가족·돌봄·노동의 압박 속에서 고립된 이들의 삶을 다룬 영상 설치 작품 '증발자들',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처럼 가부장적 한국 사회를 지탱해 온 오랜 풍설을 담은 오브제 작업 '귀신이 되기까지 9년' 등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는 관객을 가만히 두지 않지만 작품이 어렵거나 난해한 것은 아니다"며 "설명을 읽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참여해 달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혜수는 이화여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나왔다. 2010년 금호영아티스트, 2014년 송은미술대상,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에 선정됐다.
설문과 인터뷰를 통해 개인의 경험을 수집하고 이를 사회 구조와 연결하는 '프로젝트 대화'를 이어왔으며, 작업 과정에서 축적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출판물도 펴내고 있다.
이번 전시는 10월 18일까지 이어지며 작가와의 대화, 전시 연계 강연 등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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