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재발견] 미로 정원 같은 모래언덕 마을…제주 평대리

해안사구 방벽 삼아 거센 바닷바람 막고 삶의 터전 일궈
불림모살·진모살 등 모래언덕마다 이야기…생태관광 추진

고성식

| 2026-09-19 07:11:01

▲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전경 [연합뉴스 자료 사진]
▲ 제주시 평대 마을 안의 해안사구 언덕 [연합뉴스 자료 사진]
▲ 제주 평대리에서 수확되는 구좌 당근 [연합뉴스 자료 사진]
▲ 제주 한동리 단지모살 해안사구 [연합뉴스 자료 사진]

[※ 편집자 주 = 저출산·고령화와 청년 유출로 지역 소멸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연합뉴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각 지역의 숨은 자랑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재발견하는 기획을 시작합니다. 문화·경제·사회 전반에서 인물, 음식, 문화재, 특산물, 관광지 등은 물론 차별화된 경쟁력을 지닌 다양한 아이템을 발굴해 매주 토요일 송고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자부심 제고, 관광 활성화,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등을 추진함으로써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이탈리아에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있다면 제주에는 '모래마을' 평대리가 있다.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는 바닷가에서 불과 수백m 떨어진 해안사구(바닷가에 형성된 모래언덕 등 모래지대) 일대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평대리에는 2∼5m 높이의 모래언덕 사이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풀과 나무들이 푸르게 자란 모래언덕이 굽이굽이 이어져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미로 정원 같은 독특한 모습을 이룬다.

주민들은 대부분 예로부터 내려오는 반농반어(半農半漁) 생활을 지금도 이어오고 있다. 마을 인근 농경지에서 농사를 짓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바다로 나가 어로 활동도 한다.

평대리 주민들이 '벵디'라고 부르는 평탄한 농경지를 지키면서 해안 가까이에 정착할 수 있었던 데는 모래언덕 등 해안사구가 큰 역할을 했다.

평대리가 있는 제주 구좌읍에는 바다에서 강한 북서풍이 육상으로 불어오는데, 이때 백사장 등 해안의 모래가 강한 바람을 타고 육지 안쪽까지 날아든다.

모래바람이 워낙 심해 구좌읍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빗대 모래바람을 '모살(모래의 제주어)비'라고 부른다.

해변에서 날아온 많은 양의 모래가 바위 지대나 땅 위에 쌓이면서 평대리 인근 김녕리에는 1970년대 말까지 국내 최대 규모의 해안사구가 형성됐을 정도였다.

야외에서 일을 하던 중 새참을 먹을 때면 밥 위에 모래가 쌓이고 농사를 기껏 지으면 농경지가 모래로 뒤덮일 정도라고 하니, 모래바람은 구좌읍 주민들이 극복해야 할 자연환경 중 하나였다.

그래서 구좌읍의 옛 마을 대부분은 모래바람을 피해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조성됐지만, 유독 평대리만은 모래언덕을 방벽으로 삼는 등 적극적으로 활용해 해안 가까이에서 삶의 터전을 일궜다.

평대리 옛 주민들은 해안에 높게 쌓인 모래언덕 안쪽 평탄한 지형에 집들을 낮게 지어 강한 모래바람을 피해 마을을 조성했다.

또 모래언덕이 농경지로 부는 강한 바닷바람을 막아줬기 때문에 해안 가까이에서 농사도 가능했다.

평대리 한 주민은 "과거에는 높은 모래언덕 옆에 낮게 집을 지어 바닷바람을 막았기 때문에 집 안으로 모래가 덜 들어왔다고 한다"라며 "마을이 해안사구 안에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대부분 모래언덕이 잘 보존돼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오랫동안 모래언덕과 함께 생활해온 만큼 각각의 모래언덕에는 '불림모살', '진모살', '복동모살', '수리앗길' 등 고유의 이름이 있고 마을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 현재 벵뒤공원길 일대의 모래언덕은 과거 아이들이 모래 동굴을 파며 놀던 놀이터였고, 어른들이 고구마를 널어 말리던 장소로 활용됐다.

1980년대 들어서는 평대리 사구의 모래밭에서 당근 재배가 본격화됐다.

물 빠짐이 좋은 모래밭에서 재배한 평대 당근은 길쭉한 모양으로 인기를 끌었고 이후 재배지가 구좌읍 전역으로 급격히 확대됐다.

평대리뿐 아니라 구좌읍 곳곳에서 해안사구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평대리 옆 마을인 한동리 주민들은 마을 내 해안사구인 '단지모살' 조림 사업에 참여했고 이를 통해 받은 임금의 절반을 모아 마을 우물이나 학교를 조성하는 비용으로 사용했다.

인근 행원리 마을 모래언덕인 연대봉은 숲이 우거져 주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구좌읍 전역에는 '모살가름', '앞모살동' 등 모래를 뜻하는 제주어 '모살'이 들어간 지명이 곳곳에 남아 있고, 제주 전통 굿 본풀이에도 모래 지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평대리 주민들은 2024년 환경부로부터 생태관광마을로 지정되면서 시민단체인 제주자연의벗과 함께 해안사구 모니터링 및 복원 활동에 나서고 있다.

해안사구와 마을을 연계한 생태관광을 통해 마을 활성화와 사구 보존을 동시에 이루는 것이 목표다.

제주도 역시 올해부터 '제주도 해안사구 보전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해안사구 보전에 나섰다.

국내 해안사구 권위자인 서종철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평대리 등 구좌읍은 해안사구의 형성 과정을 관찰하고 배우면서 생태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국내의 드문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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