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해민
| 2026-09-05 0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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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합뉴스) 최해민 기자 = 반세기 넘게 미군 폭격 훈련장으로 활용돼 온 경기 화성시 매향리 일대가 소리를 테마로 한 웰니스 관광지로 재탄생했다.
전쟁의 상흔을 평화의 상징으로 승화하는 의미에서 현장에 조성된 대규모 평화생태공원 안에 개관한 평화기념관은 폭격의 소음이 걷히고 남은 자연의 소리를 활용해 방문객들에게 치유의 기회를 선사한다.
화성시는 최근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로부터 '웰니스 관광지'로 인증받은 매향리평화기념관을 지역 웰니스 관광의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 반세기 넘게 이어진 폭격음
매화 향기가 가득해 '매향리(梅香里)'라고 불린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귀를 찢는 폭격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으로 추정된다.
미군이 매향리 일대 69만4천㎡의 땅을 육상 사격장으로 활용하면서 이곳에는 공군기의 연습용 폭탄 투하와 기총 사격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1968년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95만8천㎡의 '쿠니(KOON-NI) 사격장'을 설치하면서 공식적인 육상 사격장이 모습을 갖췄다.
'쿠니(KOON-NI)'라는 명칭은 미군이 매향리에 있는 바닷가 마을 이름인 '고온'을 영어로 잘못 발음해 굳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1980년까지 농섬 일대의 해상사격장 2천281만㎡가 추가되면서 매향리에는 2천376만8천㎡ 규모의 미군 사격장이 운영됐다.
매향리 주민들은 매일 밤낮 수백개의 포탄이 쏟아지는 폭격음에 시달렸다.
고막을 찢는 소음 스트레스와 간간이 발생하는 오폭 사고로 주민들의 고통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급기야 주민들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정부와 미군에 '매향리 사격장 철폐'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0년 5월 오폭 사고로 주민 11명이 부상한 일을 계기로 매향리의 상황이 전국에 알려졌고, 매향리 사격장 존치 문제도 본격적인 공론의 장에 올랐다.
10년 넘게 투쟁해 온 주민들의 노력으로 결국 매향리 사격장은 2005년 8월 12일 공식 폐쇄됐다.
◇ 포성이 멈춘 매향리, 평화의 상징으로
54년간 포탄이 쏟아지던 매향리는 사격장이 폐쇄된 후 전쟁의 상흔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탈바꿈했다.
화성시가 매향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사격장 부지 일대에 33만㎡ 규모의 평화생태공원을 조성하면서부터다.
공원 한가운데에는 전문 전시 공간을 갖춘 매향리평화기념관이 건립돼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다.
기념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와 국내 HnSa건축사사무소가 '평화의 길, 희망의 바다'를 비전으로 공동 설계해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4천㎡ 규모로 조성됐다.
내부에는 상시 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어린이체험실, 전망대 등을 갖췄다.
옛 미군 사격장 건물 6개도 그대로 보존돼 이 중 4개는 전시실로 활용된다. 관람 동선도 미군 존치 건물을 지나 본관 건물에서 마무리되게 설계됐다.
매향리에 남은 역사의 흔적을 둘러본 뒤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에서다.
기념관 내부는 따스한 빛이 공간 곳곳에 스며들도록 설계됐다. 이는 오랫동안 폭격음으로 고통을 겪은 주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본관 옆에는 45m 높이의 전망대가 건립돼 있는데 보타는 이를 '추모의 위령비'라고 이름 붙였다.
현재 기획전시실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방식'을 주제로 한 전시가 진행 중이다.
사격장 소음에 시달린 주민들에 착안해 '소통'을 예술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 '웰니스 관광' 거점이 된 매향리평화기념관
평화를 테마로 개관한 매향리평화기념관은 지역의 아픈 역사를 다룬 전시와 함께 시민에게 휴식과 치유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웰니스 관광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폭격음이 걷힌 자리에 남은 자연의 소리를 테마로 한 소리 산책(사운드 워킹)과 '힐링요가+싱잉볼' 등 2가지다.
먼저 소리 산책은 10명 안팎의 참가자가 오디오 기기를 착용하고 기념관과 생태공원을 산책하며 자연의 소리를 녹음한 후 그 소리에서 느낀 감정을 색깔이나 그림 등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금의 매향리는 인적이 드물어 자연의 소리가 주를 이룬다. 오디오 기기를 착용하고 소리를 들으면 풀잎을 만지는 소리,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등 미세한 소리까지 느낄 수 있다.
기념관은 웰니스 관광지 인증을 통해 얻게 된 경기관광공사 전문가 컨설팅을 거쳐 연말까지 관광 프로그램 구성과 관광객 체험 요소를 보완해 나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5회, 올해 8회 실시한 소리 산책 프로그램을 내년에는 20회까지 확대 운영할 예정이다.
'힐링요가+싱잉볼'은 요가로 심신의 여유를 찾고 싱잉볼(Singing Bowl)로 마음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이다.
크리스털이나 놋쇠로 만든 그릇을 두드려 발생하는 진동과 소리를 듣는 명상법으로, 날씨나 습도에 따라 벽이나 나무, 풀잎에 반사된 소리를 다시 듣다 보면 매번 다른 소리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윤정하 화성시 매향리평화기념관 학예사는 "평화를 테마로 개관한 공간에 찾아온 시민들에게 지역 역사를 활용한 치유 관광을 어떻게 전달할지를 고민하다가 두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하게 됐다"며 "방문객들이 소리를 통해 몸과 마음의 평화를 느끼게 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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