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9-01 07:00:02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한 달 동안 1분에 한 장씩 찍은 사진 4만여 장. 사진 속에서는 겨울이 봄으로 바뀌고, 집 밖에 세워진 골판지 무대는 서서히 무너진다.
영국 현대미술가 에드 앳킨스(44)의 한국 첫 개인전 '원 데이 인 스페이스'(One Day in Space)가 서울 한남동 글래드스톤에서 시작됐다.
시간의 흐름과 소멸, 기억과 흔적을 다룬 신작 영상 '패시브 메크'(Passive Mech)를 중심으로 사진, 부조, 프로타주(문질러 본뜨기), 아상블라주(여러 사물을 조합해 만든 작품)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진과 현실의 관계, 가족의 기억과 흔적을 탐구한 작품을 선보인다.
지난달 31일 전시장에서 만난 앳킨스는 "기술이란 과학적인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언어와 문명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표현 방식을 의미한다"며 "그 기술에 따라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살펴보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전시의 중심 작품인 '패시브 메크'는 작가의 여름 별장 외부에 직접 만든 골판지 무대를 설치하고 촬영한 타임랩스 영상이다.
작가의 딸 방 창가에 카메라를 두고 1분마다 한 컷씩 창밖 풍경을 기록했다.
영상 속 무대는 특별한 사건 없이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임시 구조물이 붕괴하는 모습은 성장과 죽음, 생성과 소멸의 순환을 떠올리게 한다.
촬영한 사진 중 작가가 선별한 사진은 다양한 방식으로 출력돼 전시장에 걸렸다.
서로 다른 액자와 인화 방식은 가정에서 만든 투박한 오브제의 분위기와 미술관의 정교한 형식을 대비시킨다.
앳킨스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영상으로 변해가는 과정과 그 역사를 담고 싶었다"며 "사진은 감정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하고 기억을 촉각화하는 매체"라고 설명했다.
침대 시트를 본떠 만든 프로타주(frottage) 연작도 선보인다.
작가는 아이들이 학교에 간 뒤 침대 위에 종이를 덮고 흑연으로 표면을 문질러 주름과 형태를 옮겼다.
침대 시트의 주름은 남지만, 그 위에 누워 있던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신체가 있었던 자리만 흔적으로 남는다. 사라진 신체의 흔적을 통해 부재한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앳킨스는 "사진이 빛으로 장면을 기록한다면, 프로타주는 손의 압력과 마찰로 표면을 기록한다. 손이 빛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리얼 상자와 동물 플래시 카드 등 가족의 일상에서 나온 사물을 모아 재구성한 아상블라주(assemblage) 작업도 선보인다. 집에서 만들고 놀았던 사물과 구조물은 전시장으로 옮겨지면서 개인적인 기억의 기록이 된다.
앳킨스는 "이번 전시는 시간에 대해 생각하고 사진이라는 매체를 성찰하는 에세이"라고 설명했다.
앳킨스는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나 현재 덴마크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 뉴뮤지엄과 뉴욕 현대미술관 PS1(MoMA PS1),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베네치아비엔날레와 리옹비엔날레, 퍼포르마 등에 참여했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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