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기다림'으로 그린 회화…김택상 개인전 '그대로'

"햇빛·중력·시간이 그리는 그림…사람 손으로는 그 맛 나지 않아"
조현화랑 서울·부산 동시 개최…신작 '아이스 블러섬' 등 30여점

박의래

| 2026-09-01 07:00:03

▲ 김택상 개인전 '그대로' 전시 전경 [조현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김택상 작 '아이스 블러섬 26-57' [조현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김택상 작 '플로스 그대로 26-2' [조현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김택상 작가 (부산=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김택상 작가가 지난달 27일 조현화랑 달맞이에서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6.9.1. laecorp@yna.co.kr

(부산=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김택상(68)의 작업은 틀 안에 캔버스를 깔고 물을 붓는 데서 시작한다. 이어 물감 한 숟가락을 물 한 바가지에 가까운 양의 물에 희석해 물이 고인 캔버스 위에 붓는다.

안료 입자는 중력에 따라 가라앉아 캔버스에 스며든다. 김택상은 안료 입자가 캔버스에 충분히 스며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을 빼고 캔버스를 말린다. '물 작업'이라 부르는 이 과정을 반복하면 작가의 붓질 대신 물과 안료, 중력과 시간, 습도와 온도가 만든 색과 표면이 남는다.

인공지능(AI)에 명령어를 입력하고 클릭 한 번만 하면 원하는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시대다. 반면 김택상의 회화는 시간을 요구한다. 작업의 결과를 미리 정해두기보다 자연의 흐름에 맡기고,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린다.

지난달 27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택상은 자신의 작업을 "햇빛, 중력, 시간, 바람, 물의 움직임 같은 자연에 의해 그려지는 그림"이라며 "사람의 손으로는 그 맛이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택상의 개인전 '그대로'(As It Is)가 조현화랑 서울과 부산 달맞이점·해운대점 등 3개 공간에서 열리고 있다. 새로운 연작 '아이스 블러섬'(Ice Blossom)을 비롯해 영상 작업과 10m가 넘는 대형 회화 등 30여 점을 선보인다.

김택상은 1990년대 초부터 30여년간 물과 물감을 이용해 색의 번짐과 침전, 겹침을 실험해왔다.

대표 연작인 '브리딩'(Breathing), '플로스'(Flows), '레조넌스'(Resonance)는 각각 봄·여름·가을의 시간성을 담아왔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하는 '아이스 블러섬'은 겨울을 더한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추위에 작업 중이던 물이 얼었고, 이때 우연히 발견한 얼음 자국과 결정이 겨울의 물 작업으로 이어졌다. 영하의 온도에서 물과 물감이 얼었다 녹으며 남긴 형태는 눈꽃이나 얼음꽃을 연상시킨다.

김택상은 "그동안 물이 얼지 않도록 노력했는데, 우연히 겨울 작업이 탄생하게 됐다"며 "내 모든 작업은 시절 인연이다. 겨울 작업을 할 수 있는 때가 됐기 때문에 이번 작품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평면 회화의 영역도 확장된다.

'데어'(There)는 회화 표면을 초미세현미경으로 촬영해 물감층 사이를 움직이는 미세 입자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캔버스에 쌓인 물질의 세계를 확대해 회화의 완성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10m가 넘는 대형 회화도 선보인다. 작가는 몸의 범위를 넘어서는 작품의 규모가 관람객에게 감탄과 해방감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김택상은 "작품이 신체 범위를 벗어나면 '와'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의도적으로 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시원한 감각을 경험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택상은 중앙대 회화과와 홍익대 서양화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청주대학교 조형예술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2020년 정년퇴임한 뒤 작가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전시는 11월 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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