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8-17 07:01:01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초록빛 나무와 풀로 둘러싸인 연못 위로 작은 다리가 놓였다. 다리 위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연못에는 수련과 나무의 모습이 잔잔하게 비친다.
노랑과 연두, 청록, 짙은 녹색의 색점들이 촘촘하게 겹쳐 울창한 숲이 만들어졌고, 수면은 그 풍경을 일렁이는 모습 그대로 받아낸다. 나뭇잎과 물결, 색점의 움직임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김덕기(57)의 '셰필드 파크 앤 가든-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다.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김덕기 개인전 '웨어 라이트 링거스'(Where Light Lingers·빛이 머무는 곳)가 열리고 있다. 작가가 오랫동안 이어온 '가족'과 '행복'의 풍경이 이번에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자연으로 확장됐다.
김덕기는 여행지의 풍경을 사진처럼 옮기지 않는다. 현장에서 눈에 담은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 속에 간직했다가 작업실에서 다시 조합한다. 때로는 영국의 정원에 이탈리아에서 본 나무를 옮겨놓고, 실제로는 없던 사람이나 강아지를 화면에 더하기도 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여행을 다녀온 뒤 여행지 앓이가 시작될 때 그 마음을 담은 그림들을 그린다"며 "현장에서 받은 인상과 감정을 다시 떠올리면서 작품을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이렇게 완성한 풍경 위에 수많은 점을 찍는다. 평면적인 색면 위에 다양한 색과 농도의 점을 겹겹이 더하면서 화면에 깊이와 입체감을 만든다. 점을 찍는 과정도 일정하지 않다. 바람의 방향이나 나무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붓질의 속도와 리듬을 달리한다.
이번 신작에서는 이런 표현이 이전보다 한층 역동적으로 나타난다. '셰필드 파크 앤 가든-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에서는 나무와 풀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알부페이라 붉은 절벽과 소나무 숲이 보이는 풍경'에서는 붉은 절벽에 여러 색이 겹치며 화면을 흔든다.
'호수마을의 아침' 연작과 '키웨스트, 수평선 너머의 평온' 등에서도 풍경과 색, 점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화면 곳곳에는 가족과 연인, 관광객,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 등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들을 모두 행복한 순간에 놓는다. 인물들은 풍경에 묻힐 듯 작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관람객이 그림 속 사람들을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작품을 보는 재미다.
작가는 "삶에는 슬픔이나 절망도 있지만 나는 그것을 조금 덜 보여주고 활기찬 빛, 기쁨의 순간을 그리고 싶다"며 "그림으로 기쁨을 주는 것이 내 예술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김덕기는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즐거운 우리 집', '가족-함께하는 시간', '행복한 마을로 가는 길' 등 가족과 일상의 기쁨을 다룬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포스코미술관, 서울대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돼 있으며,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사라마 빈트 함단 알 나얀 재단과 미국·독일·홍콩의 개인 컬렉션에도 들어가 있다.
전시는 9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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