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탐험] 고추탕과 꽁다추

이동경

| 2026-09-09 07:00:09

▲ 고등어 모양의 장식품[사진/이동경 기자=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고등어추어탕[사진/이동경 기자=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고등어추어탕 전문 식당의 벽화[사진/이동경 기자=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고등어 모양의 나무 장식품[사진/이동경 기자=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꽁다추 간판을 내건 식당[사진/이동경 기자=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죽도시장의 생물 고등어[사진/이동경 기자=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포항 동빈내항[연합뉴스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포항=연합뉴스) 이동경 기자 = 항구도시 포항에는 미꾸라지와 바다 생선을 접합해 이름을 붙인 음식이 있다. 어장이 풍성할 때 많이 잡혔던 고등어와 꽁치가 그 재료다. 왜 그런 이름들이 붙었는지, 맛은 비리지 않은지 한 번 알아보자.

◇ 고등어와 미꾸라지

추어탕은 미꾸라지, 즉 추어(鰍魚)를 갈아서 끓여내는 국을 가리킨다. 남원이나 원주 등이 추어탕의 원조 도시임을 자랑한다. 그런데 포항에서는 추어를 고등어에 붙였다. 고등어추어탕(고추탕)이그것이다.

민물고기인 미꾸라지에서 바다 생선인 고등어로 재료만 바뀌었을 뿐, 조리하는 과정은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고등어추어탕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생선 살을 발라낸다는 의미의 방언으로 '추려내다'라는 표현이 있다. 삶은 고등어를 발라내서 끓인 탕을 경상도에서 고등어추래탕으로 표현했고, 이것이 고등어추어탕으로 변해 굳어졌다는 말도 있다. 추정일 뿐이다.

◇ 절대 비리지 않은 맛

어원은 어쨌든 간에 맛이 우선이다. 고추탕은 푹 삶은 고등어를 뼈째 으깨고 체에 걸러낸 뒤 된장과 시래기 또는 우거지를 넣어 끓인다. 비린내를 잡기 위해 쌀뜨물 등으로 육수를 만든다. 그렇게 하면 생선 비린내는 사라지고 얼큰함과 구수함만 남는다. 애주가들에게는 해장국으로도 딱 맞다. 처음 맛보는 사람은 생선이 들어갔다는 사실조차 알아채기 어렵다.

◇ 문 닫은 노포

포항 북구 흥해읍의 한 식당을 찾았다. 사장 이름을 간판에 내건 이 식당의 맛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애석하게도 문이 닫혀있어 인근 다른 식당으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쁜 정원을 갖춘 이 식당의 큼지막한 고등어벽화가 손님을 맞이한다. 식당 입구 바닥에 고등어 모양의 타일 장식이 이채롭다. 안으로 들어가자 벽에는 털실로 짠 고등어가 앙증맞게 매달려있다. 주방 앞에는 사찰의 풍경처럼 나무로 만든 고등어가 빙글빙글 돈다.

아기자기한 장식은 모두 주인의 손작업으로 이뤄졌다. 이 식당은 포항의 미슐랭가이드인 '포슐랭'의 추천을 받은 곳이다. 비린내를 잡는 비법을 묻자 "국산 콩을 갈아 넣는다"며 조심스럽게 귀띔한다.

  ◇ 고추탕만 있나? 꽁다추도 있다

포항 동빈내항에는 이른바 '꽁다추'라는 간판을 내건 식당이 있다. 꽁치다대기추어탕의 줄임말이다. 냉동 꽁치를 녹여 뼈째 갈아 양념한 뒤 시래기와 함께 끓이는 방식이다. 고추탕을 구수한 맛으로 먹는다면, 고춧가루를 넣어 얼큰한 꽁다추는 칼칼한 맛으로 먹는다.

이 식당은 꽁다추를 특허청 서비스표등록원부에 올렸다. 다른 식당이 꽁다추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게 했다는 의미다. 식당은 유명 만화가가 진행하는 음식 프로그램과 공중파 방송 등에 여러 번 소개된 터라, 취재에 반응이 무덤덤하다.

◇ 풍어가 낳은 식문화

포항 지역민들이 미꾸라지 대신 고등어나 꽁치를 택한 이유는 짐작할만하다.

영일만을 품은 포항은 동해안 최대의 어항이었다. 바다를 끼고 살아온 포항 사람들은 강이나 논에서 잡히는 미꾸라지보다 풍어가 들 때 남아도는 등 푸른 생선을 이용한 것이다.

상품 가치가 높은 생선은 팔고, 남은 생선은 집으로 가져와 국을 끓였다. 버리는 것 없이 모두 활용하려는 어촌의 생활 방식이 독특한 음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포항의 고추탕과 꽁다추를 이야기할 때 죽도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죽도시장의 새벽 어판장은 활기 그 자체다. 갓 잡아 올린 고등어가 탱글탱글한 눈매를 과시하면서 경매를 기다리고, 상인들은 분주하게 손님을 맞는다. 포항 사람들에게 죽도시장은삶의 터전이자 식문화의 근원이다.

◇ 오래 간직해야 할 삶의 기억

포항 토박이들에게 고등어와 꽁치를 갈아 만든 탕은 특별한 음식이다. 이들 음식은 단순한 향토 음식이 아니다. 바다와 시장, 어민들의 삶이 녹아 있는 생활 문화의 기록이다.

어린 시절 시장통 식당에서 먹던 점심 한 끼였고, 새벽 조업을 마친 어민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끼니였다. 시래기의 구수함과 된장의 깊은 맛, 이들 생선 특유의 감칠맛이 어우러진 국물은 오랫동안 서민들의 밥상을 책임졌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물회를 더 찾는다. 최근 곳곳의 노포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이유다. 고추탕이나 꽁다추는 화려한 비주얼을 가진 음식이 아니다.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먹는 유명 메뉴도 아니다.

지역의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전주에 콩나물국밥이 있다면, 포항에는 고추탕이 있다. 이들 음식은 바다 도시 포항이 쌓아온 삶의 기억 그 자체다. 서민들의 삶과 오래오래 함께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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