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화된 여성을 발화의 주체로…박영숙, 작고 후 첫 개인전

'미친년들'·'마녀' 등 대표 연작 한자리…아라리오갤러리 서울서
구조·비례 강조한 이정배 가구전 '생활'도 열려

박의래

| 2026-03-01 07:05:00

▲ 전시 전경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박영숙 개인전 '보라, 저 여자가 노래하고 춤춘다' 전시 전경.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박영숙 작가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박영숙 작 '미친년들' 연작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 전시된 박영숙 '미친년들' 연작.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박영숙 작 '마녀'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박영숙 작 '자궁의 노래: 이제 크신 어머니 자고 깨니' 스틸 사진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정배 가구전 '생활' 전시 전경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 열리고 있는 이정배 가구전 '생활' 전시 전경.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정배 가구전 '생활' 전시 전경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 열리고 있는 이정배 가구전 '생활' 전시 전경.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상화된 여성을 발화의 주체로…박영숙, 작고 후 첫 개인전

'미친년들'·'마녀' 등 대표 연작 한자리…아라리오갤러리 서울서

구조·비례 강조한 이정배 가구전 '생활'도 열려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남성들의 역사, 문화는 자연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역사였다. 이제 그 '역사'가 지구를 파괴했다는 다양한 양상이 지구 여기저기에서 드러나고 있다. 자궁이 그들을 부르고 있다. 자궁으로 돌아와 좀 쉬어 보라고. 여기는 '크신 어머니의 자궁 속'입니다. 어서 오세요."

1세대 여성작가이자 페미니즘 사진이란 장르를 개척한 박영숙(1941∼2025)의 작가 노트 '자궁의 노래: 이제 크신 어머니 자고 깨니' 중 일부다.

박영숙은 사진의 역사 속에서 대상화되어 온 여성을 자기 서사의 저자이자 발화의 주체로 격상시켰다. 그의 사진에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정체성을 탈피해 스스로를 재해석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지난해 10월 박영숙 별세 이후 첫 개인전 '보라, 저 여자가 노래하고 춤춘다'가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박영숙을 '페미니즘 사진작가'로 각인시킨 대표작 '미친년 프로젝트'의 '미친년들' 연작과 '육체 그리고 성', '내 안의 마녀' 등 다양한 연작을 만나볼 수 있다.

'미친년들'은 베개를 아이처럼 안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여자, 한복 치마끈을 풀어 헤치고 신나게 웃는 여자, 살림과 육아의 난장 속에서 기어코 외모를 단장한 채 정면을 쏘아보는 여자 등을 담았다.

박영숙은 여성적 자아를 억누르는 사회에서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던' 여성의 현실을 '미친년'이라는 화두로 풀어냈다.

박미란 아라리오갤러리 팀장은 "어디엔가 있었을 것 같은 여성으로, 절절한 사연을 안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알려 하지 않고 그냥 '미친년'이라고 손가락질만 했다"며 "작가는 1999년 스튜디오에서 그런 억울함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했고 이를 사진으로 남긴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1988년 발표한 포토콜라주 '마녀'는 박영숙이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시기에 제작된 대표작 중 하나다. 마녀를 연상시키는 여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인화 과정에서 버려진 사진 이미지들을 병치했다.

작가는 이런 작업을 통해 부당한 역사 속에서 희생된 여자들의 영혼을 불러내 위로하려 했다.

이 작품은 김혜순의 시 '그곳 2-마녀 화형식'에서 영감받았다. 박영숙은 시의 마지막 행인 '몸 전체에 불길을 매단 채'라는 표현에서 영감을 얻어, 여성 억압의 대표적 사례인 서양의 마녀 화형식을 탐구해 작업으로 구현했다.

'자궁의 노래: 이제 크신 어머니 자고 깨니'는 1994년 전시 '여성, 그 다름과 힘'에서 선보였던 프로젝트 작품이다.

여성의 자궁을 주제로 박영숙의 사진 슬라이드 위에 가수 한영애의 구음을 음향 요소로 덧입힌 형태다. 아날로그 슬라이드 필름 영사 방식으로 만든 기존 작품을 디지털 판본으로 복원해 전시에서 공개했다.

박미란 팀장은 "박영숙은 사회가 존중하지 않은 여자들을 연민하고, 특정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규정된 역할과 책임을 강요하는 관습의 부당함에 분노했다"며 "박영숙의 사진은 여자의 주체성을 불온한 광기로 치부하면 스스로 기꺼이 '미친년', '마녀'가 되겠다는 선언의 일환"이라고 했다.

박영숙의 전시와 함께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4층에서는 이정배 작가의 가구전 '생활'도 열리고 있다.

'미술가가 만드는 가구'라는 개념 아래 구조와 비례, 균형을 바탕으로 실용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가구 17점이 출품됐다.

빽빽한 도심 빌딩들 사이로 언뜻 보이는 산, 아침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네모난 모양의 빛 등 도시에서 마주하는 분절된 자연을 소재로 작업하는 이정배는 가구에도 이런 모습을 담았다.

가구로 구성한 공간 안에 자연 풍경을 담은 평면 작업 4점도 함께 전시됐다.

두 전시 모두 4월 18일까지 열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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