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보고싶은 여배우의 하루…홍상수 신작 베를린서 공개

34번째 장편 '그녀가 돌아온 날' 베를린영화제 상영

김계연

| 2026-02-19 07:09:53

▲ '그녀가 돌아온 날' [ⓒJeonwonsa Film co. 재판매 및 DB 금지]
▲ '그녀가 돌아온 날' [ⓒJeonwonsa Film co. 재판매 및 DB 금지]
▲ 18일 베를린영화제에서 관객과 대화하는 홍상수(왼쪽), 송선미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딸이 보고싶은 여배우의 하루…홍상수 신작 베를린서 공개

34번째 장편 '그녀가 돌아온 날' 베를린영화제 상영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10년 넘게 연기를 쉬다가 독립영화로 복귀한 배우 배정수(송선미 분)는 어느 식당에서 기자 3명과 연달아 인터뷰를 한다.

기자들은 그의 이혼이나 키우는 강아지, 다이어트 비법 같은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다. 이혼 질문에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다른 기자가 또 묻자 조금씩 속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다시 연락해 이혼 얘기는 기사에서 빼달라고 요청한다.

홍상수(66) 감독의 34번째 장편 '그녀가 돌아온 날'이 18일 저녁(현지시간) 제76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연기를 다시 시작한 여배우 배정수의 하루를 그린 흑백영화다.

기자들은 한때 전국민에게 사랑받았던 배우를 만나 영광이라면서도 영화에 대해서는 별로 묻지 않는다. 영화가 너무 좋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정리되지 않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감상평을 내놓는다.

배정수는 술이 당겼는지 기자들에게 독일식 생맥주를 권한다. 옛날에는 맞지도 않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며 딸을 낳지 않았더라면 알코올 중독으로 죽었을 거라고 말한다. 감정을 롤러코스터에 태우는 영화를 보면 놀림당하는 기분이 든다며 영화철학도 풀어놓는다. 하나의 의도와 해석이 얼마나 쓸모없는지 얘기하는 배정수에게 기자는 도를 닦는 사람 같다고 말한다. 배정수는 딸과 강아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면서 '자기 자신을 제일 사랑하라'고 반복해서 당부한다.

오랜만에 복귀한 배정수는 연기 수업도 받고 있다. 수업에서도 낮에 했던 인터뷰를 반복하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대본을 자꾸 봐야 한다. 수업이 끝나고 강사 김영(조윤희)이 맥주 한잔 하자는데 거절한다. 딸이 기다리는 집에 빨리 가고 싶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홍상수 영화에서 감독 자신의 흔적을 읽어 왔다. 지식인 남성의 비겁함과 허위의식을 냉소로 관찰하던 홍상수가 자기 경험과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면서부터다. 김민희와 연인 관계를 인정한 2017년 이후 영화계 외부 접촉을 거의 끊고 영화 디테일에 별다른 설명을 안하면서 이런 독법이 굳어졌다. 김민희는 지난해 홍상수와 사이에서 아들을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상수는 그동안 드물게 있는 외국 영화제 자리에서도 "영화는 계획적으로 만든다기보다 주어지는 것"이라거나 "나도 내가 뭘 하는지 알 수 없다"며 어떤 의도나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고 즐겨 말했다.

홍상수는 이날 상영이 끝난 뒤 관객과 대화에서 작법에 대해 주로 얘기했다. 그는 어떤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보통 아이디어 아닌 배우에서 시작한다"며 "캐릭터와 이미지가 내재돼 있고 나머지 시간은 그저 실행이다. 실행은 발견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지루하고 긴 과정을 견디려면 대개 명성이나 돈 같은 동기가 필요하지만 나는 그런 동기가 거의 없다"며 "대상이 먼저 있는 화가의 작업과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나는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이 메시지가 중요하다, 아주 재밌는 영화를 찍고 싶다, 수백만 달러를 벌겠다, (이런 건) 너무 지루하다"고 했다.

배정수의 인터뷰 답변은 반복되는 가운데 조금씩 다르다. 홍상수는 "현실적으로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다. 우리는 항상 기억을 왜곡하고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흑백으로 만든 이유를 묻자 "그냥 흑백이 이 영화에 더 낫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홍상수는 베를린영화제가 오랫동안 아껴온 감독이다. 영화제는 1997년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열세 편을 초청해 다섯 차례 상을 줬다.

김민희는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은곰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홍상수는 2022년 '소설가의 영화'와 2024년 '여행자의 필요'로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두 번 받았다. 올해 신작이 상영된 파노라마 섹션은 작가주의 또는 실험적 작품으로 세계 영화계 경향을 가늠해본다는 비경쟁 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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