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명 관리부터 의례·문서 처리까지…조선 왕의 비서실 '매뉴얼'

은대고전문헌연구소, 승정원 실무 지침서 '은대편고' 8년 만에 완역
'정원고사'·'은대조례' 이은 번역 마무리…어휘 해설한 사전까지

김예나

| 2026-09-23 07:00:03

▲ '교점역주 은대편고' [은대고전문헌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지난 12일 열린 출판 기념회 모습 연구소 누리집에 게재된 사진 [은대고전문헌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연구소 누리집에 게재된 사진 지난 12일 열린 출판 기념회 모습 [은대고전문헌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국보 '승정원일기'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책 표지 이미지 [태학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육방(六房)에 관계된 사항을 갖추어 싣지 않은 것이 없고 격식과 규례에 대하여 책을 펼치면 일목요연하니…." (이유원 '임하필기' 중에서)

조선시대 승정원(承政院)은 왕의 '비서실' 역할을 수행했다.

승지 6명을 중심으로 한 소수 인원으로 구성됐으나 왕명을 출납하는 것부터 각종 문서 처리, 행정 업무 등 그 권한과 위상은 막강했다.

승정원의 일상을 담은 업무 일지가 바로 '승정원일기'다. 1623년부터 1910년까지 약 288년의 국정 기록은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은대'(銀臺)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이들은 어떻게 일했을까. 승정원 업무를 일관되고 정확하게 처리하기 위해 따랐던 '업무 매뉴얼(지침)'이 완역됐다.

27명의 연구자가 머리를 맞대며 8년간 고민한 결과물이다.

최근 출간된 '은대편고'(銀臺便攷·태학사)는 은대고전문헌연구소 고전문헌번역실이 2018년부터 강독과 번역을 시작해 각주 작업까지 마친 책이다.

이강욱 은대학당 명예교수를 중심으로 한 고전 번역 전문가들이 조선 헌종(재위 1834∼1849) 연간에 편찬된 '은대편고'를 번역하고 1천200여 개의 어휘를 정리했다.

조민재 은대고전문헌연구소장은 발간사에서 "'은대편고'는 조선시대 사료와 법전은 물론, 조선이라는 국가 시스템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완역본은 여섯 승지가 분담했던 업무에 따라 '이방고'·'호방고'·'예방고'·'병방고'·'형방고'·'공방고'로 나누고 공통되는 내용 등을 정리했다.

관원을 선발·임명하거나 왕명을 전달하는 절차, 휴가와 사직 절차, 국가 재정 관련 문서의 처리 규정 등 업무에 필요한 내용 등이 세세하게 담겨 있다.

국왕의 일상 의례와 행차, 국가 제향, 능·묘 관리 등의 절차도 폭넓게 다룬다.

"임금의 건강이 편치 못하여 아침저녁으로 문안할 때 '아침 문안을 하지 말라'라고 명하면 하루씩 걸러서 문안하고…." ('예방고' 중 문안 부분)

이번 책은 정조(재위 1776∼1800)대에 편찬된 '정원고사'(政院故事), 고종(재위 1863∼1907) 연간에 정리한 '은대조례'(銀臺條例)에 이어진 3대 지침서 번역의 마지막이다.

다른 두 책과 비교하면 '은대편고'는 분량이 열 배에 달한다고 한다.

연구소 측은 "세 책을 함께 읽으면 한 시대의 행정 규칙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승정원의 업무 규정이 시대에 어떻게 변화하고 정비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 연구소가 주축이 돼 방대한 분량의 역사 자료를 완역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

학계에서는 연구자의 학문적 열정, 그 가치를 알아봐 준 기업과 출판사의 뜻이 모여 뜻깊은 성과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조준희 은대고전문헌연구소 이사장은 "고전 번역은 긴긴 시대의 강을 건너온 언어가 그 뜻과 사상의 훼손 없이 새로운 토양에 뿌리 내리게 하는 고귀한 작업"이라며 연구진의 노고에 경의를 표했다.

▲ 교점역주 은대편고 = 1천488쪽.

▲ 은대편고 어휘사전 = 3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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