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8-26 07:01:00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글로벌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프리즈 서울'을 앞두고 국내 대표 상업화랑 국제갤러리가 올해 행사에 출품하는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박서보(1931∼2023)와 동시대 회화 작가 김세은(37)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를 시작했다.
박서보 작고 3주기를 맞아 마련된 회고전 '변하는 변하지 않는'은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는 박서보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번 전시는 50여 년에 걸친 그의 변화의 궤적을 따라가며 재료와 환경, 작가의 생애가 맞물려 형성한 변화의 철학을 조명한다.
1984년 작 '묘법 No. 41-84'는 박서보가 초기 연필묘법에서 한지를 활용한 작업으로 이행하던 시기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그재그 작품. 흰 안료를 바른 캔버스 위에 연필선을 반복해 그으며 호흡과 리듬을 남겼던 초기 작업에서 나아가, 한지 위에 도구를 움직이며 재료의 저항과 물성을 끌어들였다.
박서보는 1990년대 중반부터 지그재그 패턴에서 벗어나 화면의 질서를 더욱 절제해 나간 흑백묘법을 선보인다. 젖은 한지를 굵은 흑연으로 반복해 밀어내며 수직선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밀려난 한지는 돌출된 선과 요철을 형성한다. 작품의 검정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불을 지피던 아궁이의 그을음에서 비롯된 색으로, 박서보가 생전에 가장 좋아한 색으로 꼽았다.
2000년대 이후 선보인 색채묘법은 흑백묘법의 고랑 구조를 이어받되 색채를 전면에 내세운 작업이다. 바탕과 돌출된 선에 대비 또는 조화를 이루는 색을 적용해 관람자의 위치와 시점에 따라 다르게 지각되는 색의 감각을 담았다. 색채묘법의 색들은 그가 '치유의 색'이라고 부른 자연의 빛을 바탕으로 한다.
박서보는 말년까지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다.
'묘법 No. 230428'은 마지막 연작인 신문지묘법 작품으로, 오래된 신문지에 유성 안료를 칠하거나 흩뿌린 뒤 연필로 선을 그어 나갔다. 사건과 사고가 기록된 신문지를 덮고 지우듯 드로잉하면서 문명의 기록 위에 개인의 흔적을 남겼다.
박서보가 반복과 재료의 물성을 통해 회화의 본질을 재고찰했다면, 김세은은 도시를 채우는 정보와 이동의 환경 속에서 개인이 자기 위치를 감각하는 방식을 화면으로 옮긴다.
김세은의 '핏월과 픽토'는 변화가 일상화된 도시 환경을 현재형으로 다룬다.
전시 제목의 '핏월'은 모터스포츠 경기 중 실시간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전략을 전달하는 소통 공간을 뜻하며, '픽토'는 픽토그램을 줄인 말로 정보를 압축해 전달하는 시각 언어를 가리킨다.
작가는 이 두 개념을 바탕으로 정보에 대응하는 개인의 감각과 판단을 시각화한다.
'옥수'는 지인에게 받은 옥수역 사진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화면의 환풍구와 녹지대는 작가가 유년기에 경험한 분당 아파트 단지 안 자투리땅의 기억과 이어진다. 작가는 효율성의 논리 속에서 개발되고 재편되는 도시 풍경을 개인의 기억과 현재의 장소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바라본다.
'터널화' 연작은 앞으로만 이동할 수 있는 터널의 내부를 세 점의 회화로 풀어낸다. 작가는 제한된 이동과 폐쇄적 구조 안에서도 신체가 원경과 근경을 인지하는 방식에 따라 공간을 다각적으로 구성한다.
김세은은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영국왕립예술대학에서 회화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20년 금호영아티스트로 선정됐으며, 올해 제4회 서울예술상 포르쉐 프런티어상을 받았다. 서울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두 전시 모두 10월 18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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