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꿈, 구사마의 점, 호크니의 풍경…현대 회화 흐름 한눈에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현대회화 하이라이트: 시대의 초상'
폴 델보·드 쿠닝·조지 콘도 등 14명 대표작 20점 선보여

박의래

| 2026-09-19 07:01:01

▲ '현대회화 하이라이트: 시대의 초상' 전시 전경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마르크 샤갈 '방스 주변'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폴 델보 '크리스마스의 밤'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윌렘 드 쿠닝 '무제 XIX'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데이비드 호크니 '더 많은 월드게이트 통나무, 2009년 10월 13일'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조지 콘도 '경영진들과 그들의 아내들'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현대회화 하이라이트: 시대의 초상' 전시 전경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사진의 발명과 같은 과학기술의 발달은 19세기 서양미술의 질서를 바꿨다.

사실적 재현의 의무에서 풀려난 회화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를 거쳐 20세기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다양한 아방가르드 사조로 나아갔다.

격변을 겪고 있는 현대 회화를 초현실주의·추상·포스트모더니즘 세 갈래로 나눠,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현대 회화의 흐름을 조망하는 전시가 서울 대치동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다.

'현대회화 하이라이트: 시대의 초상'은 마르크 샤갈(1887∼1985), 구사마 야요이(1929∼2026), 조지 콘도(69) 등 작가 14명의 대표작 20점을 통해 20세기 이후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을 살펴보는 미술 교과서를 펼쳐놓은 듯한 전시다.

전시의 첫 부분인 '꿈의 산책'은 초현실주의를 살펴보는 공간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색한 초현실주의 회화를 보여준다.

대표작은 샤갈의 '방스 주변'이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샤갈은 벨라루스 비텝스크의 유대인 거주구역에서 성장했다. 그에게 집과 농장, 동물은 평생 되풀이된 소재였다. 유대교 신비주의 하시디즘의 영향은 샤갈의 그림 속 바이올린 연주자와 랍비, 공중에 떠 있는 인물 등의 상징으로 남았다.

샤갈은 입체주의적 형태 해석과 서정적인 색채를 결합해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었다. 프랑스 남부 방스에 머물며 그린 '방스 주변'에는 야곱의 사다리와 물고기, 그리스도가 있는 벽시계가 등장한다.

푸른빛 천상과 붉은 장미, 초록 잎사귀, 노란 미모사가 어우러진 지상 풍경이 대비를 이룬다. 화면 앞쪽의 황금빛 얼굴은 화가 자신이며, 과일과 꽃, 빵, 일곱 촛대가 놓인 식탁은 생명의 이미지를 더한다.

벨기에 화가 폴 델보(1897∼1994)의 1956년작 '크리스마스의 밤'도 만날 수 있다.

델보는 고전적인 필치로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묘사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는 화가다. 기차가 역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화면에는 적막이 감돈다.

달빛 아래의 역과 과감한 원근법, 사물의 형태를 낯설게 만드는 그림자는 밤을 현실이 아닌 꿈의 공간으로 바꾼다.

델보는 기차역을 즐겨 그려 '역의 화가'로도 불렸다.

두 번째 파트 '난해한 추상'은 모더니즘 추상의 유산과 현대적 변주를 소개한다.

추상표현주의 거장 윌렘 드 쿠닝(1904∼1997)의 1984년 작 '무제 XIX'는 작가의 말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네덜란드에서 미국으로 밀항한 그는 주택 페인트공으로 일하며 익힌 큰 붓과 페인트의 감각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추상표현주의 화풍을 구축했다. 알츠하이머로 인지 기능이 저하된 뒤에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무제 XIX'는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 무렵 제작됐다.

구사마의 2003년 작 '인피니티 도트 (AB)'는 작가가 경험한 환시에서 출발한 반복의 회화다.

어린 시절 식탁보의 꽃무늬가 자신을 덮치는 듯한 환시를 경험한 구사마는 이를 그림으로 옮기며 공포를 극복하려 했다. 화면을 채운 점과 원색은 무한히 증식하는 물방울의 환영을 표현한다.

초기 작업에서 반복과 강박의 이미지를 보여줬던 것과 달리, 이 작품은 강렬한 색채와 정교한 반복 패턴으로 보다 강한 에너지를 전한다.

'형상의 부활'은 추상 중심의 모더니즘 이후 서사와 역사, 일상 풍경, 개인의 경험이 다시 부각된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을 다룬다.

데이비드 호크니(1937∼2026)의 '더 많은 월드게이트 통나무, 2009년 10월 13일'은 고향 요크셔의 시골길을 담은 풍경화다.

붉은색과 초록색의 강한 대비, 화면 가까이 다가온 통나무와 길의 원근은 전통적 풍경화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린다.

호크니는 평생 회화와 사진, 디지털 미디어를 넘나들며 평면 위에 세계를 재현하는 실험을 이어갔다.

콘도의 2011년 작 '경영진들과 그들의 아내들'은 고전 회화의 도상을 빌려 현대 자본주의의 풍경을 풍자한다.

미술사를 공부하고 앤디 워홀의 팩토리에서 일한 경험은 고전 회화와 팝아트를 결합한 콘도의 화풍으로 이어졌다.

작품은 정장을 입은 남성들 사이에 여성 누드를 배치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연상시킨다. 권력과 부, 성적 대상화의 문제를 비튼 작품이다.

콘도는 불안과 탐욕, 광기, 히스테리 등 여러 심리 상태를 한 화면에 담는 방식을 '심리적 입체주의'라고 불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미화 큐레이터는 "출품작은 각 시대와 작가의 주요한 관점을 잘 포착한 대표작들"이라며 "작품의 시각적 특성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작가가 놓였던 사회적·개인적 환경까지 함께 살필 때, 오늘 우리가 사는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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