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선지에 번진 바람·천 속 숨은 조각…이강소의 계속되는 실험

"안 하던 짓 하면 내가 처음 하는 것"…50여 년 실험 궤적 한자리에
롯데뮤지엄서 '일어나고 사라지는'…회화·조각·설치 등 150여 점

박의래

| 2026-08-23 07:01:02

▲ 이강소 개인전 '일어나고 사라지는' 전시 전경 [롯데뮤지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강소 작가 [롯데뮤지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강소 개인전 '일어나고 사라지는' 전시 전경 [롯데뮤지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강소 작 '바람이 분다' [롯데뮤지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강소 개인전 '일어나고 사라지는' 전시 전경 [롯데뮤지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강소 개인전 '일어나고 사라지는' 전시 전경 [롯데뮤지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강소 개인전 '일어나고 사라지는' 전시 전경 [롯데뮤지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이강소(83)는 여든을 넘긴 지금도 예술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캔버스에서 작업하던 '바람이 분다' 연작을 화선지로 옮기고, 미공개 조각을 천 속에 감춰 '유령조각'으로 선보인다.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이강소 개인전 '일어나고 사라지는'(Emergence and Dissolution)이 이달 21일부터 열리고 있다. 회화와 조각, 설치, 판화, 사진, 영상 등을 아우르는 약 150점의 작품을 통해 1970년대 실험미술부터 현재까지 반세기 넘게 이어진 작가의 궤적을 대규모로 조명한다.

이강소는 회화와 조각,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구상과 비구상, 추상을 넘나들며 한국의 실험미술을 이끌어 온 작가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신체제'(1969∼1976),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1969∼1975), '대구현대미술제'(1974∼1979), '에꼴드서울'(1975∼1999) 등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는 작가의 의도만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흙을 던지는 신체의 움직임, 중력과 충돌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한 흔적, 작품 앞에 선 관객의 기억과 감각까지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전시 제목 '일어나고 사라지는'은 이강소의 작업이 지닌 시간성을 압축한다.

화면 위 먹의 번짐과 붓의 흔적, 중력에 따라 달라진 흙의 형태, 천 아래 감춰진 조각, 전시장에 머무는 관객의 시간은 모두 고정된 결과가 아니라 생성되는 과정에 놓인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지난 2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일어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신비롭다. 지금 우리가 살아 있는 그 자체가 정말 신비스러운 것"이라며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슬픈 것이 아니라 아름다울 수도 있고, 너무나 멋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한국화 재료를 활용한 '바람이 분다' 연작은 작가의 회화 실험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을 주로 사용해 온 이강소는 화선지와 먹을 통해 붓질의 속도와 농담, 번짐과 스밈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룬다. 전통 재료를 활용하지만 한국화의 정형성을 따르기보다 우연과 행위, 생성과 소멸에 관한 오랜 질문을 밀고 나간 작업이다.

붓이 만든 선과 종이 위에서 예측하지 못하게 퍼지는 먹의 움직임이 공존하는 화면은 제목처럼 붙잡을 수 없는 바람의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예상해서, 의도적으로 그리지 않는다"며 "기분이 괜찮을 때, 편안할 때 붓을 마음대로 놀리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나온다. 인위적으로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에서 굉장한 신비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령조각'도 새로 선보이는 신작이다.

작가가 실제 작업실에서 조각을 천으로 감싸 보관해 온 방식에서 착안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조각 20여 점을 천으로 덮은 상태에서 선보였다.

관객은 조각 전체를 확인할 수 없고, 천 밖으로 드러난 일부의 윤곽과 형태를 통해 그 존재를 짐작하게 된다. 작품은 감춰졌지만 관객은 드러난 윤곽을 바탕으로 상상하며 작품에 또 다른 형상을 부여한다.

이 작품들은 이번 전시 기간 내내 천에 덮여 있어 관객들은 실물을 확인할 수 없다.

여러 시기에 제작된 '던지기 조각' 30여 점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작가는 흙을 손에서 던져 바닥에 부딪히게 하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형태를 받아들인다. 방향과 속도, 충돌 과정에서 생기는 형태는 예측할 수 없지만, 작가에게 그 불확실성은 작업에서 제거할 대상이 아니라 조각을 성립시키는 조건이다. 이 작품들은 조각을 정교하게 다듬어진 결과물이라기보다 시간과 신체, 재료의 만남이 응축된 흔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여든이 넘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 작가는 "안 하던 짓을 하면 그것은 내가 처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다"며 "관객들도 안 하던 짓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1일까지.

(끝)

[ⓒ K-VIB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