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8-12 07:01:01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한국 개념미술에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우순옥(1958∼2023) 작가를 조망하는 회고전이 열린다.
성곡미술관은 12일부터 10월 3일까지 우순옥의 회화와 드로잉, 설치, 영상 등 대표작을 선보이는 '우순옥_예술은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를 개최한다. 1980년대 초기 작업부터 작고 직전까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소개한다.
우순옥은 평생 존재와 기억, 시간과 공간에 대해 질문한 개념미술가다.
그의 관심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삶과 예술, 개인의 기억과 세계, 존재와 부재,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일상의 사물과 공간에 축적된 시간과 기억을 작품으로 끌어들였다.
연필과 파스텔, 녹슨 철판, 연기와 빛, 식물, 오래된 책상과 의자, 입었던 옷과 같은 평범한 사물도 그의 작업에서는 기억과 존재를 감각하게 하는 매개가 됐다.
특히 우순옥은 예술가가 모든 것을 의도대로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사물과 자연이 지닌 시간과 우연성을 받아들였다. 2016년 개인전 '무위예찬'에서 보여준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사물과 자연이 스스로 변하고 드러나도록 기다리는 태도에 가깝다. 그에게 예술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과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이었다.
'연기드로잉'은 뜨겁게 달궈진 전기 플레이트 위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설치작품이다. 물방울은 곧 수증기로 변해 빛 속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낸 뒤 사라진다.
하지만 물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수증기는 주변을 두른 철판과 만나 철판을 녹슬게 하고, 그렇게 생긴 녹은 작가의 통제를 벗어나 연기가 만들어낸 얼룩처럼 철판 위에 흔적으로 남는다.
'따뜻한 벽'은 멀리서는 보통의 흰 벽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불룩한 곡면의 벽이다. 벽 안에는 발열 장치가 설치돼 있어 사람의 체온과 비슷한 온기를 낸다.
벽의 모양과 온기 때문에 손을 대면 임신부의 배를 만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벽면 위 두 개의 조명은 사람의 눈처럼 보인다.
삶을 상징하는 따뜻함과 죽음과 단절을 연상시키는 벽을 결합해 생명과 죽음의 순환을 생각하게 한다.
'방'은 12장의 검은 천을 천장에서 바닥까지 늘어뜨리고 그 위로 달을 띄운 설치작품이다.
관람객은 천 사이를 산책하듯 다닐 수 있다. 천 사이에 들어선 관람객은 나만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우순옥은 작가 노트에서 이 작품에 관해 "흔들리는 빛줄기. 빛과 그림자에로 산책. 어스름한 통로 속에서의 가벼운 몽상. 무심한 마음…"이라고 적었다.
'아주 작은 집'은 전등갓과 거울, 비누, 장난감, 책, 빗 등 일상에서 발견하거나 선물 받은 108개의 사물을 바닥의 그리드 위에 배치한 작품이다.
서로 다른 기억과 시간을 품은 사물들은 그리드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작가에게 평범한 물건은 더 이상 쓰임을 다한 물건이 아니라 각자의 시간과 기억을 품은 존재다.
'사물의 질서'는 작가의 옷과 건조 과일, 깨진 거울, 돌, 갈대 등 서로 다른 시간과 성질을 가진 사물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배치한 작품이다. 언뜻 보면 무질서하게 걸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질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체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가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공존하는 상태를 말한다.
우순옥은 이화여대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회화를 공부한 뒤 1985년 독일로 건너가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약 7년간 독일에 머물며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자신의 조형 언어를 발전시킨 그는 귀국 후에도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작업했다. 1995년부터 2022년 정년퇴임까지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이수균 성곡미술관 부관장은 "우순옥의 예술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과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이라며 "이러한 예술관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개념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며, 예술과 삶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 중요한 성취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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