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창
| 2026-06-06 07:00:11
[imazine] '신(神)들의 휴양지' 크로아티아 ④ 오파티야·리예카·크르크
이스트라 반도의 관문…최초의 관광휴양지·최대 무역항·명품 와인 산지
(오파티야·리예카·브르브니크=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아드리아해의 최북단.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마주 보고 있는 이스트라 반도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3개국이 분할하고 있다.
그 대부분은 크로아티아 영토다. 남쪽에서 이스트라 반도로 들어가는 초입에 오파티야와 리예카가 있고 그 밑에 크르크섬이 떠 있다.
◇ 크로아티아 최초의 관광휴양지
오파티야는 크로아티아 최초의 관광휴양지다.
작은 어촌이었지만, 1844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리예카 출신의 부유한 상인 이지니오 스카르파가 아내를 위해 여름 별장을 짓고 오스트리아 황제 등 고위층을 초대하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1882년 아드리아 연안 최초의 호텔이 문을 열었고 유럽 각국의 귀족과 유명인들이 휴양차 이곳을 찾았다.
스카르파의 별장 근처에는 오파티야를 방문한 유명인들의 얼굴이 그려진 벽화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황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와 커크 더글러스의 얼굴도 보인다.
해안 별장 주변은 사이프러스, 월계수, 은행나무 등 전통 수종 외에 카멜리아(동백), 대나무, 목련, 히말라야삼나무, 미국 소나무, 야자수 등 외래종까지 150종 이상의 식물들이 서식하는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오파티야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체코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얀 쿠벨릭이 바이올린을 켜는 동상은 금방이라도 숲속에서 음악이 들려올 것처럼 생동감을 준다.
무엇보다 오파티야 해변의 주인공은 '갈매기와 소녀' 동상이다.
소녀는 손바닥에 앉은 갈매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소녀를 꿈꾸듯 바라보게 된다.
◇ 작은 어촌에서 얻는 것
오파티야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20분쯤 내려가면 모슈체니치카 드라가(Mošćenička Draga)라는 작은 어촌이 나온다. 500여명이 사는 이 마을에 잠시 들렸다.
작고 한적해서 소리치면 건너편 마을까지 들릴 것 같은 적요함. 우리는 가끔 이런 곳에서 막연한 자아 구원의 희망을 찾아보기도 한다.
가정집을 개조한 초미니 어업박물관에 들어갔고 고기잡이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알게 됐다.
마을 길을 걸었다. 연륜이 묻어나는 작은 교회 문 앞에 사이프러스 두 그루가 호위 무사처럼 서 있다. 이런 교회는 무조건 문을 밀고 들어가 본다.
마을에서 바라보는 아드리아해의 윤슬에 눈이 부셨다. 마을은 앙증맞게 작은데 이 마을이 품은 바다와 어부들의 꿈은 한없이 넓고 크다.
오파티야에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크로아티아 제3의 도시 리예카가 나온다. 크로아티아 최대의 무역항이라고 해서 리예카를 산업도시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
신고딕 양식의 화려한 외관을 가진 카푸친 성당, 100년 넘은 파빌리온에 자리한 중앙 시장, 로마 제국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개선문이었던 올드 게이트, 리예카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트르사트 성, 옥색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사블리체코 비치,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해양 박물관 등 여행자를 유혹하는 '볼 것'들이 즐비하다.
◇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고 드물다"
화이트와인을 좋아한다면 놓칠 수 없는 곳이 크르크(Krk)섬의 브르브니크(Vrbnik)다.
돌이 많은 석회암 토양에 강한 햇빛, 바닷바람이 독특한 테루아(Terroir)를 이뤄 즐라흐티나(Žlahtina)라는 최상급 토착 품종을 만들어냈다.
브르브니크의 와이너리에 가면 은은한 과실향과 입안을 자극하는 산미, 미세한 미네랄리티가 느껴지는 와인을 시음하고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크르크섬은 명품 올리브오일로도 유명하다. 쌉싸름하고 매콤한 맛의 이곳 올리브오일은 수작업으로 소량 생산하는 경우가 많아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렵다.
크르크섬 동쪽 해안 절벽에 위치한 브르브니크는 중세 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좁은 골목길이 많다.
그중에서도 클란치치(Klančić) 거리는 가장 좁은 폭이 약 43㎝인 세계에서 가장 좁은 골목길로 불린다.
길이라기보다 틈새라고 부르는 게 맞는 듯한 공간이지만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확실해 보인다.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이라지만, 좁은 길이 주는 철학적 의미 또한 상당하다. 스피노자는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고 드물다"고 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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