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창
| 2026-06-06 07:00:07
[imazine] '신(神)들의 휴양지' 크로아티아 ① 두브로브니크
에메랄드빛 바다·오렌지색 지붕의 물결…'아드리아해의 진주'
라구사 공화국의 500년 역사, 성벽 안에 완벽하게 보존
(두브로브니크=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닷속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오렌지색 기와로 붉게 물든 도시의 지붕 밑을 떠돈다.
잿빛으로 속속들이 반질반질해진 골목길. 거리에 나선 여행자는 가스등이 불을 밝혀도 돌아갈 줄 모른다.
꿈에서, 상상에서 본 듯한 풍경, 인간세계를 다스리다 지친 신들이 쉬었다 갔음직한 장소들. 크로아티아에 딱 맞는 수식어는 '신들의 휴양지'다.
◇ 천국이 있다면…
성벽에 올랐다. 몇 계단 오르니 바다가 보인다. 카메라를 꺼냈다. 조금 더 오르니 가슴이 뻥 뚫린다. 다시 찍었다.
성벽은 높은 곳으로 이어진다. 몇 발짝 못 가 붉은 지붕과 푸른 바다가 경계를 그린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또 찍을 수밖에.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픽셀로 저장하는 무한반복의 여정.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을 걷는 뭇 여행자들의 눈에는 오렌지빛의 지붕이, 뭉클해진 가슴에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새겨진다.
'내가 사는 곳이 천국'이라는 말이 구호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순간 지구상에 천국이 있다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해 버린다.
1979년 일찌감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무대인 두브로브니크다.
그런데 아쉽게도 너무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했다.
대표적으로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고 했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라는 말도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이미 해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이 도시를 '천국'과 동급으로 만들었을까.
◇ 중세로 향하는 문
라구사(Ragusa) 공화국. 이름도 낯선 이 공화국은 14∼19세기 아드리아해를 따라 길게 이어진 달마티아 지역에 실존했던 작은 국가다.
해상 무역이 번성했고, 15∼16세기 베네치아 공화국과 경쟁했다. 1808년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했다. 이 공화국의 수도 라구사가 바로 지금의 두브로브니크다.
도시는 높이 25m, 길이 2㎞의 거대한 성벽 안에 라구사 공화국 당시의 중세 구시가지를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다.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필레 문 앞에 섰다.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조각상이 문 위, 견고한 돌 틈 사이에서 문을 지나는 사람들을 감시하듯 내려다본다.
신비롭게도 필레 문은 여행자를 올드 타운이라는 공간뿐 아니라 아득한 중세로 데려다준다.
문을 들어서니 탑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고 건물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돔 모양의 조형물이 나타난다. 15세기에 지어진 오노프리오 분수다.
16개의 수도꼭지에 모두 다른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딱 봐도 여긴 만남의 장소임을 알 수 있다.
구시가지 안에서 반드시 들어가 봐야 할 곳을 두 개만 고르라면 프란체스코 수도원과 렉터 궁전을 꼽고 싶다.
1360년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수도원의 어두운 회랑을 걷다 보면 기둥 뒤로 수도사와 수녀가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중세 수도원의 전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곳엔 1317년에 설립돼, 현재도 운영 중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 있고 2만권이 넘는 책을 소장한 17세기 도서관도 있다.
약국에선 수도사들이 200년 된 레시피로 만든 장미크림 등 다양한 화장품을 살 수 있다.
렉터 궁전은 라구사 공화국의 최고 통치자인 '렉터'들이 살던 장소다. 당시 귀족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렉터들의 재임 기간은 놀랍게도 딱 한 달이다. 독재 방지를 위해 한 달짜리 실무형 총통을 유지했던 이 급진적 권력 시스템은 라구사 공화국의 번영과 생존에 어떤 역할을 했을까.
◇ 1천600년 된 유해
두브로브니크에선 어딜 가나 성 블라이세 조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름을 딴 성 블라이세 성당도 있다. 그에 대한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성 블라이세가 누구길래. 아르메니아 주교였던 그는 316년 로마의 박해로 참수형을 당했다.
그로부터 600년이 흐른 10세기 두브로브니크의 한 신부의 꿈에 그가 나타나 베네치아의 공격 계획을 알렸고 덕분에 도시가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12세기부터 그는 이 도시의 수호성인이 됐다.
성 블라이세 성당 가장 높은 곳에는 금빛 주교관을 쓴 성 블라이세 조각상이 우뚝 서 있고, 시민들은 그 앞에서 모두 이 조각상을 우러러본다.
이 성당은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결혼식 장소이기도 하다. 때마침 떠들썩한 결혼식이 열렸다. 신랑 신부가 문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당 안에는 4세기 순교 성인으로 전해진 성 실반 마르티르의 유해가 제단 밑에 모셔져 있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유해는 마치 어제 죽은 사람 같다. 1천600년 됐다는 설명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구시가지 북쪽을 병풍처럼 둘러친 스르지 산(778m)은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정점이다.
눈부시게 푸른 옥색 바다와 오렌지빛 중세 도시, 그 옆에 떠 있는 로크룸섬까지. 이 모든 걸 내 발밑에 둘 수 있다. 라구사 공화국의 500년 역사가 발밑에 있다.
◇ '천국'의 요리 페카
두브로브니크에서 맛볼 수 있는 달마티아 지역 전통 음식은 많지만, '천국'에서 신들이 먹었음 직한 요리로는 단연 '페카'(Peka)가 아닐까.
철판 냄비에 양, 송아지, 문어 등을 당근, 감자, 파프리카, 토마토, 올리브유, 와인 등과 함께 넣어 뚜껑을 덮은 뒤 고기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4∼5시간 화덕에 구워내는 요리다.
각종 재료의 맛과 향이 스며든 고기나 문어가 입에서 녹듯 부드럽다.
또 한 가지, 페카를 먹기 전에 에피타이저로 나온 크로아티아 프로슈토의 맛도 잊을 수 없다.
천일염에 절인 돼지 뒷다리를 아드리아해의 건조한 바람에 수개월에서 수년간 말려 숙성시킨 생햄이다.
이탈리아 프로슈토와 달리 훈제향이 나며, 쫄깃하고 짭조름한 맛이 일품으로, 얇게 썰어 치즈, 와인과 함께 즐긴다.
저녁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날은 저물고 골목 구석구석 장식 등이 불을 밝혔다.
두브로브니크의 또 다른 모습이 보였다. 희미한 불빛은 중세 도시의 잿빛 건물 벽과 수많은 인파로 반질반질해진 바닥에도 스며든다.
석조 아치와 돌계단, 레스토랑의 천막, 테라스의 철제 장식, 가스등… 그 사이를 유령처럼 배회하는 사람들.
두브로브니크의 진짜 매력은 단 하나도 똑같지 않은 좁은 뒷골목 풍경에 있는 것 같다.
◇ 유럽의 만리장성이 여기에
자동차나 버스를 타고 두브로브니크에서 해안선을 따라 북서쪽으로 1시간쯤 가면 스톤(Ston)이라는 작은 도시를 만난다.
스톤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길고, 전 세계에서도 중국 만리장성 다음으로 긴 5.5㎞의 성벽을 볼 수 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온 천일염 생산지로, 성벽은 소금 생산지를 보호하기 위해 건설됐다.
2천400여명의 주민이 사는 '마을'에 가깝지만, 14∼15세기에 완성된 요새 유적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한가로이 염전과 마을 길을 걷다 보면, 한없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하루 이틀 묵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필히 하게 될 것 같다.
스톤 인근에는 굴 양식업의 성지로 이름난 말리 스톤(Mali Ston)이 있다.
로마 제국 시절 이곳의 굴은 황제에게 진상되는 최상급 식재료였다. 나폴레옹은 전쟁 중에도 말리 스톤의 굴을 찾을 정도였다고 한다.
갓 잡은 굴의 껍데기를 쪼개니 뽀얀 속살이 드러났다. 여기에 레몬즙을 뿌려 한입에 넣으니 짭조름한 바다향이 혀 안에 밀려온다.
물론 굴 한 입 다음엔 소주가 아니라 크로아티아산 화이트와인 '포십'(Posip) 한 잔을 곁들여야 한다.
이 페어링이 완성되는 순간, 로마 황제도 나폴레옹도 단번에 이해하게 된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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