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신(神)들의 휴양지' 크로아티아 ② 스플리트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가 1700년 전 은퇴 후 삶을 꿈꾼 '황제의 도시'

권혁창

| 2026-06-06 07:00:08

▲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 종탑에서 바라본 스플리트 구시가지 [사진/권혁창 기자]
▲ 스플리트 구시가와 항구 [사진/권혁창 기자]
▲ 로마 시대 당시의 궁전 모습 [사진/권혁창 기자]
▲ 스플리트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사진/권혁창 기자]
▲ 스플리트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열주광장 [사진/권혁창 기자]
▲ 스플리트 주피터 신전 앞에 있는 목이 잘린 스핑크스 [사진/권혁창 기자]
▲ 스플리트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황제 알현실 '베스티뷸' [사진/권혁창 기자]
▲ 스플리트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의 왼쪽 엄지 발가락은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있다. [사진/권혁창 기자]
▲ 스플리트 '엠마누엘 비도비치 갤러리'의 포스터[사진/권혁창 기자]

[imazine] '신(神)들의 휴양지' 크로아티아 ② 스플리트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가 1700년 전 은퇴 후 삶을 꿈꾼 '황제의 도시'

(스플리트=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아드리아해의 미풍이 야자수 잎을 흔든다.

대형 크루즈선이 정박한 항구와 말끔히 정비된 해안 산책로. 모던하고 세련된 해안 휴양지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현대적인 거리 한편에 줄지어 선 고풍스러운 건물이 왠지 심상치 않다.

무려 1천700년 전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244∼312) 황제가 퇴임 후에 거주할 목적으로 지은 궁전이다.

고대와 현대가 인접한 이 특이한 앙상블이 이곳의 매력이다.

두브로브니크에서 북서쪽으로 200여㎞ 거리에 있는 스플리트(Split)다.

◇ 양배추 농사에 빠진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근처 살로나에서 태어났다. 하층민 출신으로 직업군인의 길을 가다가 전임 황제의 경호대장을 거쳐 황제가 됐다.

그는 제국 방위를 위해 사두정치 체제를 창안했고 기독교를 탄압한 황제로 알려져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은퇴 후 삶을 꿈꾼 보기 드문 황제였다.

고향 근처 스플리트에 개인 황궁을 건설했으며, 재위 21년이 되는 305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이 궁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는 이곳에서 채소를 가꾸며 살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은퇴 후 로마 정정이 불안해지자 사람들은 그의 황위 복귀를 간청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직접 심은 양배추를 당신의 황제께 보여드릴 수 있다면, 황제께서는 감히 내가 이곳의 평화와 행복을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의 폭풍으로 대체하라고 제안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휴양지 스플리트의 아름다움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이미 발견한 것이었다.

탐욕스러운 권력욕 대신 고향으로 돌아와 평화로운 채소 가꾸기를 선택한 황제의 심미안이라면 현재 스플리트가 가진 가치는 1천700년 전에 찾고도 남음이 있음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 스핑크스의 머리는 어디에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동서 181m, 남북 215m 규모다. 높이 20m, 두께 2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마치 요새를 방불케 한다.

사방으로 4개의 문이 있는데 남문은 바다 쪽으로 통한다. 바다에 면한 쪽으로 황제와 가족들이 살았고, 북쪽에는 700명의 하인과 병사들의 거처가 있다.

궁전에서 가장 큰 광장은 열주광장(Peristyle)이다. 황제가 회의나 행사를 주재한 장소로, 16개의 웅장한 대리석 기둥이 황제의 압도적 권위를 대변한다.

광장 안에 있는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은 원래 구조를 유지하며 사용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성당이다.

바로 옆 57m 높이의 종탑은 좁은 계단을 통해 오를 수 있다. 올라가면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기둥 사이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스플리트 구시가의 붉은 지붕들과 아드리아해, 항구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다.

궁전에는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12개의 스핑크스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3개뿐이며, 그중 하나가 열주광장에 있다.

또 하나는 광장 근처 주피터 신전 앞에 있는데, 이 스핑크스는 이교도의 조각상이라는 이유로 머리와 앞발이 잘려 나갔다.

열주광장에는 이집트의 도시 이름을 딴 '룩소르'라는 카페가 있다. 황제의 광장 안에 있는 카페라니. 명당 중에서도 최고의 명당 아닌가.

가격은 조금 비싸도 룩소르에서 커피 한 잔 마신 뒤 광장 계단에 앉아 먼 고대 로마로 상상의 날개를 펴보자. 스플리트 여행에서 생략할 수 없는 여정이다.

◇ 엠마누엘 비도비치

열주광장에서 남쪽 계단을 올라오면 돔 모양의 건물에 로마의 판테온처럼 지붕에 원형 구멍이 뚫린 특이한 공간이 나타난다. 황제의 알현실인 베스티뷸(Vestibul)이다.

마침 이곳에선 '클라파'(Klapa)라고 하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역의 전통 아카펠라 공연이 무대도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반주 없이 부르는 남성들의 화음이 둥근 공간에 울려 퍼졌다. 뚫린 천장을 통해 신에게 전달되는 천상의 음악이었다.

궁전의 북문을 나가면 10세기 대주교였던 그레고리우스 닌의 거대한 동상과 마주한다. 크로아티아인들이 모국어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투쟁한 인물로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라고 한다.

4.5m 높이의 이 동상의 왼쪽 엄지발가락은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거의 모든 사람이 만지고 지나간다.

시간을 짜내 엠마누엘 비도비치(1870∼1953)의 갤러리에 들렸다.

스플리트 출신인 비도비치는 유럽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그가 초기에 인상주의와 점묘법으로 그린 아드리아해 연안 풍경 그림이 꽤 많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고향인 스플리트 항구 그림을 보고 놀랐다. 거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희미한 불빛만이 명멸하고 있다.

유럽 최고의 일조량을 자랑하는 밝고 투명한 아드리아해의 햇살은 어디 갔는가. 그의 마음속 고향은 이처럼 깜깜한 어둠 속에 있었던가.

씁쓸해진 마음에 궁전의 서문을 나와 벼룩시장에서 어느 누군가 이 항구에서 맥주를 따라 마셨을 작은 주석잔 하나를 샀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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