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창
| 2026-07-01 07:01:00
[여행honey] '보랏빛으로 물드는 추억' 동해 무릉별유천지
40년간 석회석 캐던 폐광산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
(동해=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대지가 산 밑까지 보랏빛으로 넘실댄다. 청옥색 호수는 꽃잎의 눈부심으로 모자라 그 향기마저 탐한다. 사이사이로 모든 사람이 웃고 있다.
40년 넘게 석회석을 캐던 폐광산의 놀라운 변신. 동해 무릉별유천지의 라벤더 축제 현장이다.
◇ '별천지가 맞네'
차에서 내려 고개를 드니 대형 공장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회색빛 건물이 무심히 서 있다.
1968년 문을 연 쌍용C&E가 석회석 원석을 캐 잘게 쪼개던 쇄석장을 개조한 건물이라고 한다. 얘기를 듣고 보니 그렇게 보였다. 육중한 콘크리트 기둥, 금속 트러스트 지붕, 건물 밖으로 튀어나온 컨베이어벨트가 그랬다.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 축제장의 전경을 바라보는 순간 생각은 달라진다.
무릉별유천지라는 이름은 인근 무릉계곡과 그곳의 경치에 놀란 묵객이 썼다는 '별유천지'에서 따온 이름일 뿐, 도연명의 '무릉도원'과 이백의 시구 '별유천지비인간'과는 관계없다는 설명에 반신반의한다.
이곳은 아마도 최소한 무릉도원과 별천지를 지향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했다.
◇ 잉글리시 라벤더
이곳의 호수는 1개가 아닌 2개였다. 청옥호와 금곡호.
청옥호는 인근 청옥산의 이름을 땄지만, 물색이 청옥색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녔다고 김봉진 도슨트가 알려줬다.
그는 바람이 없는 아침 시간 청옥호의 맑은 수면에는 하늘과 구름, 산과 나무와 꽃이 그대로 투영된다고 했다.
라벤더정원은 두 호수 사이에 펼쳐져 있다.
2만㎡(6천여평)에 심어진 1만3천주의 잉글리시 라벤더가 신비로운 보랏빛 바다를 만들어냈다.
남유럽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라벤더는 물 빠짐이 좋고 바람이 잘 통하는 염기성 토양에서 잘 자란다고 하니 석회석 탄광이었던 이곳이야말로 최적이다.
라벤더정원 주변엔 금계국의 노랑과 서양봉선화의 진분홍이 어우러져 형형색색의 꽃 잔치를 벌이고, 푸른 6월의 하늘 위로 뭉게구름이 바람 따라 흘러가니 여기에 온 누구든 멈춰 선 곳이 바로 포토존이다.
◇ 이제 좀 쉬고 싶은 거인
갑자기 라벤더 꽃잎 위로 검은 그림자가 휙 지나갔다. 독수리였나. 고개를 들었다. 미스터리한 비행물체는 새가 아니라 스카이글라이더라는 놀이기구다.
4명을 태운 글라이더는 125m 상공을 건너편 산까지 날아갔다가 돌아왔다. 총길이가 777m라고 한다.
꽃밭만 있는 줄 알았던 무릉별유천지는 스카이글라이더 외에 알파인코스터, 오프로드 루지, 롤러코스터형 집라인 등 각종 체험시설 타는 재미도 쏠쏠하다.
청옥호 호숫가로 내려가면 특별한 조형물도 만날 수 있다. 이곳을 지키는 거인상 '무릉정령', 철제와 콘크리트로 만든 '거인의 휴식'이 우뚝 서 있다.
거인의 휴식은 콘크리트로 만든 다리를 쭉 뻗고 있다. 김봉진 도슨트는 "40년 동안 거대한 석회 광산에서 일하고 이젠 좀 쉬어야겠다는 의미"라고 귀띔했다.
참으로 애교스러운 발상 아닌가. 여긴 놀이공원도, 꽃밭도, 축제장도 아닌 복합문화공간이었다.
◇ 행복한 고민
금곡호에서 서북쪽으로 가파른 언덕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두미르' 전망대가 나온다. 한여름엔 고생스러울지 몰라도 운동 삼아 올라가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 같다.
석회암 채굴을 위해 다이너마이트로 산을 계단식으로 폭파한 암벽 절개지 위에 전망대를 설치했다.
마치 크레인처럼 사선으로 솟은 전망대에 오르면 무릉별유천지의 모든 것이 한눈에 잡힌다.
부지를 기부한 쌍용C&E가 두마리 용(쌍용)을 뜻하는 두미르라는 이름을 붙였다.
별유천지엔 곳곳에 탄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쇄석장 앞 광장 부근에 가면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중장비인 85t짜리 '몬스터 덤프트럭'을 볼 수 있다.
석회석 채석장에서 발파된 석회석을 실어 나르던 거대한 운반 장비로, 바퀴 하나 크기가 2.7m이고 집 한 채를 완전히 부숴서 트럭에 담을 수 있다고 한다.
탄광의 흔적은 아이스크림에도 있다. 마시멜로를 얹은 회색빛 '시멘트 아이스크림'을 판다.
라벤더 축제장에서 파는 보라색 '라벤더 아이스크림'과 시멘트 아이스크림을 놓고 뭘 먹을 것인지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 묵호를 아는가
'바다. 한 잔의 소주와 같은 바다였다.'
1990년 발표된 심상대의 단편 소설 '묵호를 아는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9월 아스타국화 이벤트 때에 다시 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별유천지를 떠나는데, 바다가 보고 싶었다.
지금은 동해시 묵호동으로 쪼그라들었지만 한때 묵호는 엄청난 호황을 누리던, 동해에서 가장 잘나가던 항구였다.
인근의 모든 탄광에서 생산된 석탄과 시멘트를 출하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폐탄광의 현주소를 본 뒤 묵호항에 들려보는 건 자연스럽다.
항구를 배회하다가 논골담길을 걸어 올랐다. 땀이 흘렀지만, 뒤돌아 소주 같은 바다를 바라보면 금세 시원해졌다.
비탈길 어느 작은 집 정원에 핀 접시꽃이 탐스럽다.
시멘트로 흥했던 1960∼1970년대 시끌벅적하던 묵호와 한적함과 적막함 속에 접시꽃이 외롭게 핀 묵호, 그 두 얼굴이 다 이 길에 있다.
걷다가 지역 문인인 김경식 시인의 '네게 가고 싶다'가 가슴을 울렸다.
'아, 꽃피면 꽃 피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난 네게 가고 싶다.'
무역으로 잘 나가던 묵호든, 관광지가 된 묵호든, 우리는 지금 묵호로 가고 싶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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