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어'는 퀴어영화 아닌 변방서 애쓰는 인간 모지민의 성장기"

트랜스젠더 아티스트 삶 다룬 다큐멘터리…"이젠 당당한 예술가죠"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해 준 작품…포기하지 않고 존재할 것"

김정진

| 2022-06-17 07:00:05

▲ 영화 '모어' [엣나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다큐멘터리 영화 '모어'의 주인공 모지민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다큐멘터리 '모어'의 주연 모지민이 1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6.16 ryousanta@yna.co.kr
▲ 영화 '모어' [엣나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다큐멘터리 영화 '모어'의 주인공 모지민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다큐멘터리 '모어'의 주연 모지민이 1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6.16 ryousanta@yna.co.kr
▲ 다큐멘터리 영화 '모어'의 주인공 모지민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다큐멘터리 '모어'의 주연 모지민이 1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6.16 ryousanta@yna.co.kr

"'모어'는 퀴어영화 아닌 변방서 애쓰는 인간 모지민의 성장기"

트랜스젠더 아티스트 삶 다룬 다큐멘터리…"이젠 당당한 예술가죠"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해 준 작품…포기하지 않고 존재할 것"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떨어진 은행잎들이 널브러져 있는 거리, 망사스타킹에 뾰족구두를 신은 이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가 향한 곳은 이태원 클럽 '트랜스'. 경쾌한 록 사운드가 흘러나오는 지하공간에서는 반짝이는 조명보다 화려한 드랙퀸 '모어'의 무대가 펼쳐진다.

무대는 곧 끝나지만 팁으로 푼돈을 준 관객에게 분노하고, 깃털 같은 가짜 속눈썹을 단 채 지친 표정으로 지하철을 탄 인간 모지민의 삶은 계속된다.

23일 개봉을 앞둔 다큐멘터리 영화 '모어'는 자신을 '모어'(毛魚)라 이름 붙인 트랜스젠더 아티스트 모지민의 이야기다. '더'라는 뜻의 영어단어 모어(More)이기도 하지만 '털 난 물고기'라는 뜻도 갖고 있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질적인 존재란 의미다.

16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만난 모지민은 개봉을 앞둔 소감을 묻자 "이보다 더 찬란할 수 없다. 이 찬란을 맛보기 위해 험난한, 모진 세월을 버티고 살아왔나 생각이 든다"며 벅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영화는 그의 부모님을 비롯해 남편 제냐, 우상에서 친구가 된 '헤드윅' 원작자 존 캐머런 미첼, 중학교 동창, 같은 성 정체성을 지닌 미스 인터내셔널 퀸 한민희 등과 함께 모지민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모지민은 촬영에만 3년이 걸렸다고 밝히며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치부를 비롯한 내면의 모든 걸 끌어내야 하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저는 아름다움을 좇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열매를 얻고자 이를 악물었죠. 나중에는 원형탈모로 머리에 구멍 5개가 생겼어요. 과정은 고달팠지만 그래도 영화의 엔딩이 제 결혼인 것처럼 모든 것은 해피엔딩인 것 같아요."

영화는 단순히 모지민의 일상만을 좇지 않는다. 중간중간 삽입된 뮤직비디오 형식의 영상들은 화려한 의상, 메이크업, 퍼포먼스를 황홀하게 담아내 아티스트 모어의 진면목을 보여줌과 동시에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모지민은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묻자 전남 무안의 들판에서 찍은 '경운기 퍼포먼스'를 꼽았다.

"역사상 전무한, 아주 특별한 장면이잖아요. 엄마·아빠가 저를 낳고 기른 공간에서, 경운기 위에, 제가 드랙퀸 (분장을) 하고 있거든요. 정말 최고인 것 같아요."

영화는 지난해 9월 첫선을 보였던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데 이어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불장군상,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아빈 크리에이티브상을 받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주인공 모지민은 남성과 여성, 그 어떤 성별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화진흥위원회 데이터베이스에 배우로 등록되지 못했다. 영진위 홈페이지 속 '모어'의 정보란에는 모지민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대해 모지민은 "역시 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안타깝죠. 왜 이렇게 후져야 하는 건지.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었잖아요. 세상에는 너무 많은 성이 있고, 그것을 존중해야 하는데 아직도 여성과 남성으로만 규정하는 이 사회가 아주 모순적이죠. 대한민국이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는 걸 절감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영화 '모어'를 통해 "살아있어 너무 다행이다"라는 감사함을 만끽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부끄러워서 저 자신을 예술가라고 말하지 못했어요. 이제는 좀 당당하게 '나는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게 됐죠. 이 영화는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어요. 진짜 인생은 고난과 역경이지만, 한 번이니까 애써야만 하는 것 같아요. (웃음) 포기하지 않고 존재하면 돼요."

모지민은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퀴어 영화'가 아닌 '인간 모지민의 성장기'라고 했다.

"모지민이라는 한 존재가 이토록 후진 변방에서, 한국 사회에서, 그 어둡고 외롭고 가난한 곳에서 애를 쓰고 투쟁하고 아름다움을 좇아가며 살아가고 있고, 건재하고, 그 아름다움을 결국 얻어냈다는 거예요. 변방에서 애쓰는 예술가 모어의 행보를 따라가며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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