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가스 가득 차도 버텼다"…'6·10 최루탄' 39년만에 세상 밖으로

전대열 4·19공로자회 편집장, 6월항쟁 최루탄 파편 민주화운동기념관 기증키로
"증거로 남겨놔 참 다행…후손들이 투쟁의 역사 기억해주길"

정윤주

| 2026-06-13 06:50:00

▲ 전대열 4·19혁명공로자회 편집장 [민주화운동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전대열 편집장이 현장에서 수거한 최루탄 파편들 [촬영 정윤주]
▲ 전대열 편집장이 기증하기로 한 최루탄 파편 모습 [민주화운동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전대열 편집장이 자신이 기증하기로 한 최루탄 파편들을 보며 발언하고 있는 모습 [민주화운동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소셜+] "가스 가득 차도 버텼다"…'6·10 최루탄' 39년만에 세상 밖으로

전대열 4·19공로자회 편집장, 6월항쟁 최루탄 파편 민주화운동기념관 기증키로

"증거로 남겨놔 참 다행…후손들이 투쟁의 역사 기억해주길"

(서울=연합뉴스) 정윤주 기자 = "보관한 지 1년쯤 됐을 때 한 번 꺼내봤는데 집안에 최루가스가 가득 차고 가루까지 날려 난리가 났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네요."

12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 자리에 위치한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만난 전대열 4·19혁명공로자회 편집장(85)은 39년간 간직해 온 최루탄 파편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전 편집장은 1987년 6·10 민주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 주도로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성당에서 열린 농성에 참여했다.

그는 1960년 전북대 재학 시절 4·4 시위를 주도하는 등 꾸준히 민주화운동에 몸담았다. 5·16 군사정변 이후에는 예비검속 등으로 다섯 차례 옥고를 치렀다.

시간이 흘러 마흔을 넘긴 1987년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특별위원으로서 6월 항쟁에 참여했다.

노년기에 접어든 지금도 6월항쟁 당시 기억은 생생하다.

전 편집장은 6·10 항쟁 하루 전 대한성공회 성당에 도착해 시위대에 합류했지만, 전날 밤부터 농성을 막아선 경찰과 대치해야 했다.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가 열린 6월 10일에는 끼니도 거른 채 하루 종일 시위에 참여했다.

전 편집장은 회사 점심시간에 와이셔츠 차림으로 뛰쳐나와 시위에 합류한 이른바 '넥타이 부대'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그는 "점심 먹으러 나온 '화이트칼라'들이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으로 쏟아져 나왔다"며 "6월 항쟁은 대한민국 사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함께했다"고 회상했다.

시위가 끝난 뒤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길거리를 가득 메운 최루탄 파편이었다.

발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파편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고 거리에는 매캐한 가스가 가득했다. 모두가 숨을 헐떡이며 지나칠 뿐, 최루탄 잔해에 관심을 두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전 편집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최루탄 파편들을 '역사의 증거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종이봉투에 파편을 쓸어 담았다.

전 편집장은 "길거리에 어마어마한 양의 파편이 널려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며 "당시에는 전두환 정권이 물러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할 때였지만 역사적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파편을 수거하는 모습을 경찰에 들켰더라면 연행됐을 수도 있었다"며 "나로서는 큰 용기를 낸 행동이었다"고 덧붙였다.

그가 수거한 최루탄 파편은 24점으로, 현장에서 사용된 두 종류 최루탄의 일부로 보였다.

수류탄처럼 안전핀을 뽑아 던지는 이른바 '사과탄(KM25탄)'과 총기에 장착해 발사하는 'SY44탄'으로 추정된다.

사용된 최루탄이라 부품별로 분리돼 있지만 안전핀과 스프링 등은 온전한 상태다. '진압용 총류', '폭동'이라고 쓰인 글자도 변색 없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전 편집장은 이렇게 수거한 파편들을 집에 가져와 베란다에 보관했다.

약 1년 뒤 비닐봉지로 옮기기 위해 종이봉투를 연 순간 6월 항쟁 현장이 눈앞에 재연됐다. 봉투를 여는 것만으로도 최루탄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졌기 때문이다.

전 편집장은 "그 뒤에도 한 번씩 열어볼 때마다 6월 항쟁의 유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마 누구도 최루탄 파편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 것 같다. 저거라도 증거로 남겨둔 게 참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 편집장은 이 파편들을 민주화운동기념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그에게 최루탄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시민들의 투쟁을 상징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1960년 3·15 부정선거 마산 시위 중 숨진 고(故) 김주열 열사의 눈에 박혀 있던 것도,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故) 이한열 열사의 머리를 강타한 것도 경찰이 쏜 최루탄이었다.

전 편집장은 최루탄 파편이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증명하는 유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전시를 통해 후손들이 민주화를 위해 목숨 걸고 투쟁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당부를 남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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