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재
| 2026-08-10 06:30:02
(강릉=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 자작나무 작은 구멍 속의 동그랗고 맑은 두 눈과 마주쳤다.
도심 외곽 소나무 숲의 경계에 하얗게 솟은 한 그루 자작나무 구멍 속에서 작고 붉은 생명이 숨을 죽인 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소쩍새와의 만남이었다.
주인공은 밤의 숲을 지키는 파수꾼이자 천연기념물(제324-6호)인 소쩍새, 그중에서도 보기 드문 '적색형'(Red-morph) 소쩍새였다.
카메라에 800㎜ 망원렌즈를 물리고 숨을 죽이며 둥지 속 소쩍새를 더 가까이 들여다봤을 때의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둥지가 서걱거리는 바람으로 녹색 잎에 가려 아쉬움이 밀려오던 찰나.
파인더 너머로 자작나무 구멍 속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오는 어느 순간,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보통 국내에서 접하는 소쩍새는 회갈색이나 잿빛 털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렌즈에 들어온 녀석은 일반 소쩍새와 달리 붉은빛 깃털을 지닌 적색형으로, 전체 개체군에서도 비율이 높지 않아 좀처럼 만나기 힘든 매우 귀한 손님이었다.
하얀 자작나무 수피와 대비되는 붉은 깃털은 그 자체로 숲이 숨겨둔 보물 같았다.
이 소쩍새 보금자리는 몇 년 전 탐조에 진심인 한 지인이 알려준 곳이다.
하지만 소쩍새가 둥지를 튼 곳은 탐조 환경으로는 꽤 아슬아슬했다.
한적하다고는 하나 바로 옆으로 차들이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도로변이기 때문이다.
차를 오래 세워두거나 위장막을 치고 관찰하게 되면 사람들의 눈에 띄어 둥지가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번식기와 새끼를 키우는 육추기의 조류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이 시기 사람의 잦은 발걸음은 이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자칫하면 둥지를 포기하거나 새끼를 두고 떠날 위험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후 매년 1∼2차례만 찾아가 소쩍새의 존재를 슬쩍 확인하고 돌아서곤 했다.
어느 해는 빈 둥지만 확인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고, 어느 해는 자작나무 둥지 속에 살포시 고개를 내민 소쩍새를 확인한 뒤 미련 없이 돌아서 다음 해를 기약했다.
그래서 소쩍새의 전체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계절이 돌아왔다.
조심스레 망원렌즈 너머로 바라본 자작나무 구멍 속에는 붉은 깃털과 귀깃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어 설렘을 줬다.
수년째 같은 둥지를 찾아와 무사히 생명을 이어가고 있음을 확인한 순간, 야생이 전해주는 고마움이 밀려왔다.
농약 오남용과 산림 훼손 등으로 소쩍새를 비롯한 조류들이 마음 편히 쉴 서식지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존재만을 확인한 뒤에는 삶을 방해하지 않으려 '조용한 배려와 건강한 거리두기'로 발걸음을 자제해왔다.
오늘도 자작나무를 품은 소나무 숲의 소쩍새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밤을 기다리고 있다.
그 평화로운 보금자리가 오래도록 지켜지기를, 그리고 다시 일 년 뒤에도 건강하게 다시 만날 조용한 재회를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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