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미국 서부 내륙 소도시 기행 ①솔트레이크시티가 품은 대자연

로버트 레드퍼드가 여생 보낸 '자연주의적' 매력 산재한 고장

성연재

| 2025-10-02 08:00:08

▲ '북미의 우유니'라는 별명이 붙은 보너빌 소금평원. 평소에는 소금 평원이지만 비가 오면 거울처럼 변한다. [사진/성연재 기자]
▲ 솔트레이크시티 국제공항 델타항공 라운지에 걸린 '내일을 향해 쏴라' 영화 포스터 [사진/성연재 기자]
▲ 끝없는 소금 평원을 달리는 유니온 퍼시픽 철도 [사진/성연재 기자]
▲ 하늘에서 본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 [사진/성연재 기자]
▲ 버스 앞으로 다가온 바이슨 [사진/성연재 기자]
▲ 직선으로 뻗은 도로 [사진/성연재 기자]
▲ 눈부신 흰색 소금 평원 [사진/성연재 기자]
▲ 해발 3천353m에 달하는 와사치 산맥의 스노우버드 [사진/성연재 기자]
▲ 독일 전통 의상을 입은 옥토버페스트 공연단 [사진/성연재 기자]
▲ 해발 3천m에 자리 잡은 온수풀 [사진/성연재 기자]

[imazine] 미국 서부 내륙 소도시 기행 ①솔트레이크시티가 품은 대자연

로버트 레드퍼드가 여생 보낸 '자연주의적' 매력 산재한 고장

(솔트레이크시티=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미국 서부 내륙지역은 가장 '미국다운' 풍경과 삶이 살아있는 곳이다. 소박한 그들의 미소 속에서 우리는 거친 환경을 개척하며 살아온 미국인의 저력과 여유를 엿볼 수 있다.

도시 밖으로 나서면 끝없이 이어진 도로와 붉은 사막이 영화 같은 로드트립의 본고장임을 알려준다. 겨울에는 세계적 스키 명소가 되고, 여름이면 트레킹과 낚시 등이 이어지며 사계절 내내 아웃도어의 즐거움을 준다. 화려하진 않지만, 서부 소도시는 잔잔한 감동으로 여행의 맛을 선사한다.

◇ 솔트레이크의 기원 그리고 서부시대

수많은 사람을 울고 울렸던 할리우드의 명배우 로버트 레드퍼드가 최근 유명을 달리했다.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은 유타주였다. 자연과 합일화한 삶을 중시한 그는 솔트레이크시티에서 1시간 거리의 선댄스에서 여생을 보냈다.

1961년부터 이 지역에 리조트를 세우는 등 자신의 철학이 담긴 공간을 만들어냈고 1980년에는 선댄스 인스티튜트를 세워 독립영화를 지원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과 같은 자연주의적 삶을 추구해온 로버트 레드퍼드가 여생을 보낸 유타주의 소도시들은 어떤 매력이 있을까.

유타의 관문은 솔트레이크시티다. 공항에 내리자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등 위압적인 다른 대도시의 입국 심사원들과 다른 모습이다. 심사원이 웃음을 띠며 인사를 건낸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몸을 싣고 시내로 향하니, 탁 트인 하늘과 아침노을에 붉게 물든 산맥이 펼쳐졌고 건조한 공기 속에 도시 전체를 감싸는 고요함이 느껴졌다.

도심으로 들어서면 고층 건물들 사이로 교회의 첨탑과 역사적인 건물들이 눈에 띈다. 마치 서부시대의 흔적과 현대적 풍경이 겹쳐 있는 듯했다. 솔트레이크시티는 1847년 모르몬교 개척자들이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정착지를 일구며 시작된 도시다.

모르몬교 지도자 브리검 영이 이끄는 개척자들은 대륙을 횡단해 이곳에 도착했고, 관개와 농업으로 불모의 땅을 개척해 '사막 위의 도시'를 세웠다.

1869년 대륙횡단철도의 완공은 솔트레이크시티를 서부 교통의 요충지로 바꿔놓았다. 철도는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며 광산 개발, 무역, 정착을 촉진했고, 솔트레이크는 단숨에 서부 확장의 관문으로 성장했다. 도시를 걷다 보면 모르몬교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모르몬교의 역사적·행정적 중심지인 '템플 스퀘어'(Temple Square)다. 여러 교회 건물과 방문자 센터, 박물관이 모여 있으나, 때마침 공사 중이라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 솔트레이크의 속살, 앤틸로프 아일랜드 주립공원

솔트레이크에 왔다면 '그레이트 솔트레이크' 한가운데 자리한 앤틸로프 아일랜드 주립공원(Antelope Island State Park)을 반드시 가봐야 한다. 시내에서 출발하는 그룹투어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16인승 미니버스에 각국 여행자들이 함께 타고 이동해 여행의 흥취가 더해진다.

오전 일찍 솔트레이크시티를 벗어나 서쪽으로 달리면, 거대한 호수 위에 떠 있는 듯한 섬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름처럼 영양이 뛰어다닐 것 같은 풍경이지만, 이 섬의 진짜 주인공은 '바이슨'이라 불리는 아메리카들소다.

도로를 따라 들어가던 중 풀밭 위에 우람한 바이슨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망원렌즈를 통해서나 보였던 녀석들이 어느새 미니버스 가까이 다가와 풀을 뜯고 있었다. 차창 너머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와 가슴이 뛰었다. 대평원의 지배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살아 있는 야생의 무대임을 실감했다.

섬 중앙 산길을 따라 오르니 시야가 시원하게 열렸다. 정상에 서자 은빛과 청회색으로 빛깔을 바꾸는 거대한 솔트레이크가 한눈에 들어왔다. 호수와 하늘은 경계조차 모호하게 이어졌고, 주변 산맥은 병풍처럼 둘러서 마치 세상과 단절된 기분을 줬다.

아래로 내려다본 풍경은 호수 곁으로 길게 이어진 도로, 풀밭을 거니는 바이슨 무리, 산과 호수가 빚어내는 색채가 겹겹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었다. 소금 호수는 때로는 핑크빛, 때로는 푸른빛으로 물들며 고요 속의 장엄함을 선사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사우스 웨스트 어드밴쳐 투어스' 여행사의 가이드 데이비드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보여준 한국에 대한 관심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1년 넘게 바둑에 빠져 격주로 시내 도서관에서 열리는 바둑 모임에서 실력을 갈고닦고 있었다.

그는 조훈현이 제자 이창호를 키워 결국 왕좌를 넘겨주는 과정을 그린 영화 '승부'까지 챙겨봤다고 한다. K-컬처의 파장이 K-팝과 드라마를 넘어 바둑 같은 전통문화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체감했다.

◇ '북미의 우유니' 보너빌 소금 평원

남미 여행을 말할 때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호수를 빼놓을 수 없다. 끝없이 펼쳐진 하얀 대지가 공간 감각을 마비시키는 풍경 덕분에, 우유니는 오래전부터 여행자들의 로망으로 자리해왔다. 그런데 이번 일정에서 우유니와 닮은 풍경을 뜻밖에 마주하게 됐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네바다주 쪽으로 차를 몰아가면, 풍경은 점점 단순해진다. 푸른 산맥은 멀어지고 대신 눈부시게 하얀 대지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도심에서 불과 한 시간을 달렸을 뿐인데, 마치 다른 행성에 도착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 바로 보너빌 소금 평원이다.

차에서 내리자 발밑에서 '사각사각' 소금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땅과 하늘의 경계가 사라진 듯, 지평선 끝까지 하얀 평원이 이어졌다. 햇살은 소금 결정에 반사돼 눈이 부실 정도였고, 바람 한 점 없는 고요 속에서 마치 세상 끝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빙하기 때 형성된 거대한 보너빌 호수가 기후 변화로 말라붙으며 이러한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한 물이 수천 년간 증발하면서 소금과 광물이 농축돼, 내륙 한복판에 이렇게 기묘한 소금호수가 탄생한 것이다.

걸음을 옮길수록 고요는 더 크게 다가왔고, 그 속에 묘한 해방감이 스며들었다. 해가 기울자 소금 평원은 황금빛으로 물들며 서서히 어둠에 잠겨갔다. 보너빌에서 나와 10여분가량 네바다주 쪽으로 가다 보면 주 경계가 나온다.

이곳에선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고요한 소금 사막 끝자락에 불빛 가득한 작은 도시가 갑자기 나타난다. 유타와 네바다의 경계에 자리한 웨스트 웬도버 마을이다. 카지노 간판이 줄지어 반짝이며 여행자를 유혹한다.

호기심에 들어선 작은 카지노 안은 슬롯머신 불빛과 경쾌한 효과음으로 가득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용객들의 함성으로 카지노는 떠들썩했다. 조금 전까지의 고요와는 전혀 다른 활기가 느껴졌다.

◇ 40분 거리에 해발 3천m 고산 준봉…스노우버드의 매력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차로 불과 40분 남짓. 길은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협곡으로 빨려 들어가고, 어느 순간 창밖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해발 3천353m에 달하는 와사치 산맥의 스노우버드(Snowbird). 이름 그대로 새처럼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고산 리조트가 눈앞에 펼쳐졌다.

가장 먼저 도전한 건 케이블카였다. 유리창 너머로 바위 봉우리와 가을빛이 섞인 숲이 차례로 내려앉는다. 정상에 닿으면 시야가 사방으로 확 트이고, 멀리 솔트레이크 계곡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걸어 내려오기로 했다. 초반에는 험준한 바윗길이 이어졌지만, 점차 숲이 우거진 길과 잔잔한 초원이 번갈아 나타났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요한 산새 소리와 신선한 공기가 어우러져 도심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차분한 자유를 맛볼 수 있었다.

때마침 스노우버드 일대에선 옥토버페스트가 열리고 있었다. 광장에는 독일 전통 음악이 울려 퍼지고, 각 부스에서는 갓 구운 소시지와 감자요리가 손님들을 유혹했다.

큼직한 프레즐을 곁들여 한입 베어 물면 바삭한 빵의 결과 짭짤한 풍미가 어우러졌다. 지역 양조장에서 나온 다양한 맥주는 색과 향이 제각각이었는데, 황금빛 라거부터 묵직한 흑맥주까지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축제가 끝난 뒤 각자 마신 잔을 기념으로 갖고 갈 수 있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스파였다. 인근 호텔 옥상에 자리 잡은 루프톱 수영장과 온수 풀은 그야말로 '천상의 휴식처'였다. 해발 3천m의 맑은 공기 속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사방의 봉우리가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졌다. 차갑게 식어가는 저녁 공기와 따스한 물의 대비가 만들어내는 쾌감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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