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상' 이수지 "너무 큰 상…그림책은 들고 다니는 예술"

"그림책 세계로 이끌어준 대단한 작가들 옆에 설 수 있어 영광"
"0세부터 100세까지 보는 책…실험적 형식에 계속 도전할 것"

이은정

| 2022-03-22 01:13:38

▲ 그림책 작가 이수지, '여름이 온다'로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서울=연합뉴스)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여름이 온다'가 올해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을 수상했다고 출판사 비룡소가 23일 밝혔다. 사진은 이수지 작가. 2022.2.23 [비룡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21일 이탈리아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열린 안데르센상 발표 기자회견 [볼로냐 아동도서전 홈페이지 캡처]


'안데르센상' 이수지 "너무 큰 상…그림책은 들고 다니는 예술"

"그림책 세계로 이끌어준 대단한 작가들 옆에 설 수 있어 영광"

"0세부터 100세까지 보는 책…실험적 형식에 계속 도전할 것"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아동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그림책 작가 이수지(48)는 "(나를) 그림책 세계로 들어오도록 한 작가분들 이름 옆에 설 수 있다는 게 영광"이라고 기뻐했다.

그는 21일 밤 안데르센상 일레스트레이터 부문 수상 소식 직후 연합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함께 후보에 올라온 분들이 워낙 대단한 분들이어서 누가 수상하는지 보려고 발표를 기다렸다가 제 사진이 떠서 깜짝 놀랐다. 너무 큰 상이어서 얼떨떨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안데르센상을 주관하는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는 이날 개막한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수상자를 발표했다.

이 작가는 "그림책의 거장들 틈에 끼게 돼 이 상을 받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무게감이 큰 상이다. 아이들도 팔짝팔짝 뛰며 기뻐했다"며 "특히 역대 안데르센상 수상자 중 모리스 센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그림책의 교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여름이 온다'를 작업하면서 진짜 영혼을 갈아 넣으며 만들었는데, 가장 열심히 하면서 즐거운 순간에 큰 상을 받게 돼 더욱 좋다"고 덧붙였다.

그는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시상하는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에서도 그림책 '여름이 온다'로 '스페셜 멘션'(우수상)에 이미 선정돼 겹경사를 맞았다.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가 수여하는 안데르센상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을 기념하기 위해 1956년 만들어진 상이다. 후보의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해 아동문학에 공헌한 작가에게 주어진다.

이 작가는 2016년 한국 작가로는 처음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에 오른 데 두 번째 도전 끝에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1996년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 작가는 2001년 영국 캠버웰예술대에서 북아트 석사를 마친 뒤 본격적인 그림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그림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좋아했는데 유난히 책이란 매체에 끌렸다"며 "모든 걸 아울러 종이에 인쇄해 묶으면 책이란 생각을 했고, 그중 하나인 그림책은 회화와 북아트를 공부한 저를 표현하기 좋은 매체였다"고 돌아봤다.

그는 그림책을 "들고 다닐 수 있는 예술, 한번 보고 책장에 꽂아놨다가 언제든지 다시 펼쳐볼 수 있는 예술"로 정의하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그런 예술을 접할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보는 책으로, 저도 열렬한 독자"라며 "그림책을 사랑하기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이고, 좋은 그림책을 보면 '나도 이런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그림책이 무척 많고 늘 곁에 두는데 두 아이보다도 제가 보기 위한 것이다. 좋은 그림책을 보면 애들을 앉혀놓고 읽어주곤 했다"고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림책을 펴내며 국제무대에서 주목받았다.

2016년 안데르센상 수상 작가인 차오원쉬안 글에 그림을 그린 '우로마'로 지난해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이 작은 책을 펼쳐봐'로 보스턴글로브 혼 북 명예상을 수상하고, '파도야 놀자'와 '그림자놀이'는 뉴욕 타임스 우수 그림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림책은 여러 장르를 매개하기 좋은 매체"라고 생각하는 그는 창의성과 예술을 발휘해 실험적인 형식을 접목한 즐거운 그림책을 선보였다.

'여름이 온다'는 비발디 '사계' 중 '여름'에 모티브를 두고 글 없이 드로잉 등의 기법을 응집해 청량한 이미지를 담아냈다. 책 커버 날개에 QR코드를 담아 음악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작품은 중국,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이탈리아 5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올해 6월께 출간할 신작에도 미국 작가가 쓴 글에 평소 구상하던 형식을 시도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할머니와 손자가 서로 그리워하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종이에 구멍을 뚫어 창으로 내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구현했다.

그는 "할머니와 손자가 물리적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뒤에 있는 페이지까지 겹쳐 구멍을 내면 서로 종이 안으로 들여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개했다.

이 작가는 그림책 작가 13명이 모인 창작공동체 '바캉스 프로젝트'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출판 시장에 쉽게 내놓기 어려운 실험적인 작업을 바캉스를 떠나듯이 놀면서 작업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주로 옛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실험적인 책을 내며 도서전에 출품할 작품을 만들거나 프로젝트성으로 주제를 정해 함께 모여 전시도 하고 책도 판매한다.

그는 "책을 만드는 형식에 대한 실험을 꾸준히 해나갈 생각"이라며 "그림책만이 가진 고유 특성을 이용해 책을 만드는 게 가장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안데르센상 시상식은 9월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되는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총회에서 열릴 예정이다.

(끝)

[ⓒ K-VIB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