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희
| 2026-09-30 01:00:00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석유 재벌 디거 록웰(톰 크루즈 분)에게는 그날도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을 테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잠이 깨 창밖을 바라보면 멋진 해돋이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옆에는 사랑하는 고양이가 누워있다.
록웰의 평화는 아침에 날아든 소식에 깨진다. 록웰이 석유 시추를 위해 시설을 설치한 그린란드에서 얼음의 균열 폭이 9m로 넓어졌다는 보고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록웰은 곧 그것이 전 지구적 재앙을 불러온다는 점을 깨닫는다.
영화 '디거'는 석유 재벌 록웰의 석유 시추 시설로 인해 전 세계에 기후 재난이 닥치는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다.
영화 '버드맨'(2015)으로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각본상을 받고,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긴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6)의 연출자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할리우드 최고 스타 톰 크루즈의 파격 변신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탑건' 시리즈 등에서 멋진 몸매와 화려한 액션을 뽐냈던 스타는 배불뚝이에 머리카락이 다 빠진 노인으로 등장한다. 속옷을 엉덩이에 겨우 걸친 그의 뒷모습은 눈길이 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
캐릭터도 크루즈가 주로 선보여온 헌신적이고 올바른 면모와는 거리가 멀다. 록웰은 시추 폭발 사고에도 사람보다 비싼 시설을 더 신경 쓸 정도로 탐욕적인 인물이다.
고양이 매기를 아끼는 모습은 인간적으로 비치지만, 너무 애지중지해 억지로 매기 생명을 연장한다는 점에서 역시 록웰의 탐욕적인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아랫사람을 무시하는 안하무인으로 '꼰대'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영화는 이런 록웰을 비롯해 미국 대통령 컴슨(존 굿맨), 부통령(마이클 스툴바그), 휘하 군 장성과 각료들의 모습을 과장하고 캐릭터성을 뚜렷하게 함으로써 풍자를 표방한다.
록웰의 요청으로 긴급하게 모인 대통령 휘하 각료들은 석유 시추 시설이 초래한 메탄가스로 빙하가 녹고 유럽 연안에 쓰나미가 닥친다는 명백한 인과 관계를 다른 서사로 덮으려 한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후변화를 '사기극'으로 치부하는 등 정치권이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주장을 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컴슨이 미국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적대하는 모습, 극 중 파리 기후변화 협정에 탈퇴한 미국 등도 현 세태와 무관치 않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진실을 대하는 록웰의 태도 변화로 풍자의 칼날을 예리하게 세운다. 진실을 외면해오던 록웰은 기후 재앙이 자신 때문에 초래됐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람들 앞에 선다. 석유 시추 시설이 왜 필요한지 설파하는 그의 대사는 석유로 편리함을 누리는 일상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기후 변화의 책임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꼬집는다.
크루즈는 록웰을 탐욕스러운 꼰대로 바라보던 관객을 감화시킬 정도의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이 장면을 매력적으로 표현해냈다.
형식적인 면에서 반전도 있다. 반전을 거쳐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관객은 '디거'가 허구의 농담이 아니라 세상에 들이닥칠 수 있는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디거'는 지독한 농담으로 자리 잡는다.
'버드맨',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미국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은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가 이냐리투 감독과 다시 협업해 깊이 있는 화면을 구현했다.
주연 배우 크루즈는 '디거' 개봉을 앞두고 내한해 다음 달 1일 기자간담회, 2일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다. 이냐리투 감독도 함께한다.
10월 3일 개봉. 128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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