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훈민정음 창제 이후 조선 양반 남성 지식인들은 한글을 학문의 도구로 전면 사용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심지어 여자들이나 쓸 글이라는 뜻에서 '암글'이라 부르기도 했다.
물론 지배층 남성들이 한글을 일절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삼강행실도, 소학언해 등 윤리서와 의서(醫書)인 구급방언해 등 실용적인 문헌에서는 한글을 사용해 널리 퍼지도록 밑바탕 구실을 했다. 하지만 행정과 학문을 위한 도구로는 거의 쓰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역할은 한글 발전에 절대적이었다. 특히 지배층 여성, 즉 왕실과 양반가 여성들은 실제 한글 유통의 촉매제 구실을 하며 조선 시대 한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최근 출간된 '조선시대 여성과 한글 발전'(역락)은 조선시대 한글 발달에 여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히는 한편 한글 발달이 여성의 어문생활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본 책이다.
저자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은 여성이 훈민정음 발달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각종 여성 관련 문헌을 중심으로 어문생활사 관점에서 그 맥락을 분석하고 의미를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여성의 훈민정음 사용 배경과 의미를 설명하고, 2부에서는 가사와 소설 문학 분야에서 여성들의 한글 사용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핀다. 3부에서는 한글 편지, 제문, 실용서 등을 통해 여성들이 여성들을 위해 한글을 사용한 역사와 의미를 따져본다. 마지막 4부에서는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세기별로 여성들이 한글을 어떻게 사용했고, 한글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규명한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성리학적 이념에 기반을 둔 남성 사대부들의 한자 중심 태도는 역설적으로 한글문화와 한글 발전에 여성을 우뚝 세우는 결과를 가져왔고, 여성들은 한글문화를 자신들의 문화와 남성들과 소통하는 문화로 세우고 가꿔 나갔다"고 밝혔다.
600쪽. 4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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