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람
| 2021-10-24 17:04:36
20∼30대 시절 군납과 건설 관련 일을 하던 고인은 1973년 인수한 의정부 소재 빌딩의 극장을 운영하게 되면서 다시 한번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고 경기, 강원 지역의 영화 배급을 시작했다.
이후 1984년 부도 직전의 태창영화사를 인수해 '태흥영화사'를 설립하며 20년 만에 영화제작자로 다시 나서게 됐다. 이때 임권택 감독과 '비구니'로 처음 만나게 됐지만, 당시 불교계 반발로 영화 개봉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때 만난 임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과는 평생의 트리오로 활약하며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역작을 여럿 남겼다. 특히 임 감독의 거의 모든 영화를 제작하다시피 했다.
고인은 1985년 작품 '무릎과 무릎 사이', '뽕', '어우동' 등 에로티시즘 영화를 잇달아 히트시켜 재기에 성공했고, 1989년부터 임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서편제' 등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거물 제작자로 거듭났다.
여승의 파란만장한 삶을 녹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주연배우 강수연이 제16회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는 영광도 안았다.
'장군의 아들'(1990년작)과 '서편제'(1993년작)는 각각 서울 관객 68만 명, 100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임 감독과 꾸준히 호흡을 맞춘 고인은 '춘향뎐'으로 칸 영화제에 처음 입성했다.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칸 영화제 장편 경쟁부문에 오르는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수상에는 실패했다.
그러다 2년 후 '취화선'으로 임 감독이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한국영화사를 새로 썼다.
고인이 2007년 임 감독이 연출한 '천년학' 제작을 돌연 포기하면서, 이 전 대표의 자전적 삶을 다룬 조승우 주연 '하류인생'(2004년작)이 두 사람이 함께한 마지막 작품이 됐다.
이 전 대표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의정부 소재 '태흥시네마'를 확대 운영했으며 태흥영화사가 보유한 저작권을 관리하면서 평온한 노후를 보냈다.
[ⓒ K-VIB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