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진
| 2021-02-11 15:35:45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모리 요시로(森喜朗·83) 2020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일본 호칭은 회장)이 '여성 멸시' 발언 논란 끝에 중도 하차하게 됐다.
이에 따라 개막이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조직위를 이끌 '포스트 모리' 후보군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애초 작년 7월 24일 시작될 예정이던 2020도쿄올림픽·패럴림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대회 일정이 1년 순연돼 올해 7월 23일 개막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대회를 연기토록 만든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은 아직도 종식되지 않아 올해 대회 개최도 불안한 상황이다.
일본 내에선 올해 올림픽을 치르는 것에 대해서도 취소하거나 재연기해야 한다고 반응하는 등 부정적인 여론이 80%를 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대회조직위원회는 코로나19 속의 첫 올림픽을 겨냥해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대회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엄혹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그만큼 새 조직위원장의 역할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회의 진행에) 시간이 걸린다"는 발언으로 불명예 퇴진하게 된 모리 회장은 1969년 중의원(국회 하원) 선거에서 처음 당선한 뒤 14선을 이룬 거물급 정치인이다.
정부와 자민당의 요직을 두루 거쳐 2000년 4월부터 약 1년간 총리도 역임했다.
그는 2012년 정계에서 은퇴한 뒤 일본이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유치한 이듬해인 2004년 1월 출범한 조직위 수장으로 취임해 7년여 동안 조직위를 이끌었다.
그런 위상 때문에 집권 자민당과 일본 정부 내에서는 그의 여성 멸시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세계적으로 확산한 상황에서도 계속 재임토록 하는 쪽에 힘을 쏟고 있었다.
코로나19 속에서 치러야 할 올림픽 개막이 목전으로 다가온 국면에서 조직 통할 능력이 뛰어난 그를 밀어낼 경우 막판 준비 작업에 차질이 가중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이 이번 논란이 한창일 때 "대신할 사람이 없다"고 옹호하는 등 여권에선 모리 회장의 위상을 웅변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을 계기로 일본 내에서 인맥을 바탕으로 한 물밑교섭이나 후원금 모집 능력 등을 조직위원장의 자질로 봐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분야의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는 정치인을 앉혀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도쿄신문은 지난 9일 자에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포스트 모리' 후보를 전망했다.
이 신문은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때 서방 국가들의 보이콧을 거부하고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않은 채 개인 참가 형식으로 출전해 금메달을 딴 육상 선수인 세바스찬 코가 2012 런던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지냈다며 일본에서도 그런 사례가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평화공헌이나 차별 배제라는 올림픽 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이야말로 세계인들의 지지를 모아 위기에 처한 도쿄올림픽을 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사례에 적합한 인물로는 2013년 유도 여자 선수 괴롭힘 문제가 터졌을 때 전일본유도연맹의 개혁을 촉구하고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던 작년 봄에 도쿄올림픽 연기를 앞장서 주장했던 야마구치 가오리(山口香·57) 일본올림픽위원회(JOC) 이사를 꼽았다.
1988서울올림픽 여자 유도(52㎏급) 동메달리스트인 야마구치 이사는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예정대로 '7월 개막' 입장을 고수하고 있던 IOC를 향해 "선수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세계 여자테니스 무대에서 현재 맹활약하고 있는 오사카 나오미(24)도 조직위를 이끌 자격을 갖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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