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훈
| 2021-09-30 07:10:19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지난 2019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ISU) 예술대학에 '김원숙 예술대학'(Wonsook Kim College of Fine Arts and the Wonsook Kim School of Art)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학교 출신 서양화가 김원숙(68)이 남편과 함께 1천200만 달러(약 143억 원)를 기부했고, 학교 측이 이를 기리고자 단과대학 이름을 바꿨다. 미국 대학이 한국인 이름을 딴 첫 사례로 알려졌다.
김원숙 작가는 1971년 홍익대 미대에 입학했다가 이듬해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 일리노이주립대와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약 50년간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해왔다. 1978년 세계 여성의 해에 '미국 여성 작가'로 뽑혔고, 1995년에는 유엔협회세계연맹(WFUNA)이 그해의 유엔 후원 미술인으로 선정했다.
인생사가 파란만장하다. 김원숙은 첫 남편과 한국에서 혼혈로 태어난 두 아이를 입양했다. 약 40년 전 일이다. 큰딸은 이제 50대가 됐고, 아들도 쉰을 바라보는 나이다.
김원숙은 이혼 후 약 20년 전 현 남편 토머스 클레멘트 씨와 새 가정을 이뤘다. 클레멘트는 6.25 전쟁 무렵 한국에서 태어난 혼혈아로, 정확한 생년월일을 모른다.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1956년 미국으로 입양됐다. 퍼듀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자신이 받은 특허를 바탕으로 의료기기 회사를 설립해 큰 성공을 거뒀다.
혈혈단신 미국으로 떠나 50년간 작품 활동을 이어온 아내와 전쟁고아 출신 입양아에서 성공한 과학자이자 사업가가 된 남편은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왔다. 각자의 모교에 기부한 것 외에 한국에서 온 입양아들이 친부모를 찾을 수 있도록 DNA 검사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북한 고아를 지원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사업에도 참여했다.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에서 다음 달 1일 막을 여는 개인전 '인 더 가든(In the Garden)'에 맞춰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 김원숙은 "지금까지 살면서 슬픈 일도, 나쁜 일도 많았다"라며 "이만큼 살면 좋지 않은 일도 많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고 의미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기부에 대해서는 "남편이 회사를 정리하면서 나로서는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큰돈이 생겼고, 그동안 많은 혜택을 받은 학교와 사회에 환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이름에 남김으로써 돈 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미국에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돌려주는 것을 다음 세대까지 보여줄 수 있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K-VIB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